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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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잔인하죠. p.272


길위의 시대는 1980년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시인 망허와 그와 관련된 인물의 이야기이다. 망허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이들이 있기도 하고 따지고 보면 전혀 관계없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무엇보다 지나친 미사여구를 섞지 않은 담담한 필체가 머릿속에서 무한히 퍼져가는 상상을 독자가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듯한 힘있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할 정도다. 그뿐인가. 설마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고 나중에서야 이상하게 연도가 맞지 않는다는 의심이 밀려들 즘, 찾아오는 소설의 반전은 왠지 허망해지기 까지한다. 그동안 천샹의 고생과 샤오첸의 이야기에 몰입했던 사람이라면 내가 느꼈던 배신(?)감을 분명 느꼈으리라 확신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두 여인 예러우와 천샹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여인은 아니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거나 전부를 던지는 사람은 물론 아직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사랑을 현명하고 강인하게 지켜가는 것과 사랑하는 이에게 의지하거나 사랑이라는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과는 다르다. 천샹과 예러우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에 목숨을 건 여성들이다. 그리고 사랑을 지켜가기 위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자기만의 시대를 펼쳐갈 줄 아는 능력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놀라운 것은 그녀들의 선택이 반드시 일반인들에게 호응을 얻어낼 만한 것은 아니었다는데 있다. 단적인 예로 하룻밤의 관계로 생겨난 아이를 상대가 '시인'이었다는 이유로 낳아 기르겠다고 결심하는 천샹의 모습, 그리고 그 사람이 차후에 누군지도 모르는 나그네란 사실에 아이를 죽이려고 까지 하는 모습에서는 솔직히 친구 밍추이의 입장이었다면 망허를 저주하고 미워하기 보다는 친구인 천샹이 겁나고 무섭게만 느껴질 것 같았다. 
시를 사랑한다라기 보다는 자신의 운명이 시와 연결지어졌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길을 떠난 망허의 모습은 '시'라는 화두를 던지고서라도 지금의 우리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다. 예러우와의 인연으로 그에게 목적이 생기긴 했어도 그것은 연인의 대한 사랑이지 그가 처음부터 얻고자 했던 깨달음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소설이 그러하듯 길 위의 시대 역시 작가의 경험이 많이 묻어난다. 예러우가 떠났던 그길은 작가 장윈이 연구를 위해 떠났던 길이기 때문이다. '저우시커우'. 지금 우리는 어디로 이주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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