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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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단순한 반려견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읽을수록 인간의 욕망과 상실, 그리고 우리가 소중하다고 믿는 가치들을 되묻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먼 곳에서 데려온 개 ‘이시봉’은 가족에게 단순한 개 이상의 존재다. 특히 아버지가 개를 구하려다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시봉이를 견디지 못해 집을 떠난 설정은, 시봉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족의 슬픔과 기억을 응축한 상징처럼 느껴졌다.


소설의 본격적인 긴장감은 누군가가 찾아와 “이 개의 혈통이 남다르다”며 시봉이를 팔라고 제안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작품은 액자식 구성으로 시봉이의 족보와 혈통에 관한 기록들을 끼워 넣고, 프랑스 혈통의 개가 어떻게 지금의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추리 형식까지 더해진다. 덕분에 이야기는 단순히 반려동물과 인간의 정을 다루는 데 머물지 않고, 역사와 계급, 욕망과 우연이 뒤엉킨 흥미로운 서사로 확장된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개 한 마리의 혈통을 따라가는 과정이 결국 인간 사회의 허영과 욕망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떠돌이 개일 뿐인 존재가, 혈통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갑자기 값비싼 대상으로 변한다. 작품은 이런 모습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가치의 기준을 바꾸고, 또 허상에 집착하는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시봉이를 둘러싼 가족의 감정은 인간 삶의 연약함과 우연성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가볍고 명랑하게 읽히는 장면들 사이로 삶의 허무와 씁쓸함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작가의 필체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소설을 읽다말고 내가 진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개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가 믿고 있는 가치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흔들리기 쉬운 것인지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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