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는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와 두 편의 시를 묶은 책이다. 타이틀에서 언급된 제인 오스틴을 향한 그녀의 찬가를 잠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열다섯 살의 제인이 그저 가족을 웃기기 위해 혹은 집안에서만 소비될 글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니라 (…) 모두를 위해, 자신의 시대를 위해, 또 우리 시대를 위해 글을 쓰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제인은 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작가’였다. 29쪽
제인 오스틴의 재능은 놀라울 만큼 균형이 잡혀 있었다. 완성된 소설들 가운데 실패작은 없었고, 수많은 장들 중에서 수준이 뚜렷하게 떨어지는 것도 거의 없다. (43쪽, 제인 오스틴,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지깽이 중에서)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게 아니라 완벽한 작가였던 제인 오스틴도 시대와 시스템으로 인한 제약은 분명 존재했다. 특히 울프의 말에 따르면 ‘초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모든 작가가’(85쪽, 추락하는 자에게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중에서)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가정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다. 당시에 그들이 누렸던 작가로서의 부는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다. 평생 작업만을 위한 대저택 및 관리를 위한 하인들까지 아마 요즘 아이들이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이돌’이 아니라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것 같다. 이렇게 시대가 다르다는 점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울프로 부터의 시간도 한참 흐른 요즘도 여전히 변함없이 이어지는 부분도 있다.
교양속물은 어중간한 지성을 가진 남녀입니다. 그들은 울타리 이쪽저쪽을 어슬렁거릴 뿐, 한 가지 뚜렷한 목표를 좇지 않습니다. 예술도 아니고 삶도 아닌 것이죠. 그리고 이 두 세계를 돈과 명성, 권력, 지위와 뒤섞어 구별할 수 없게 만들고, 예술이든 삶이든 어딘가 불쾌한 방식으로 그것을 추구합니다. 131쪽 (내가 교양속물을 싫어하는 이유 중에서)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작가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다리를 놓아주려는 시도를 할 뿐 그자리에서 내려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울프의 지적에 작가 뿐 아니라 대부분의 독자들도 불편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특히 교양속물의 정의와 그들이 보여주는 행태 묘사에 떳떳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물론 자신을 순수 지식인으로 칭하는 현실 자체를 풍자하는 솜씨도 놀랍기만 하다. 무엇보다 자본과 전쟁 그리고 정치가 작가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룬 내용들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들에게 영향을 당연히 대단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만의 전쟁’이었던 과거에는 작가들은 전쟁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좀 라디오를 통해 그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느꼈다면 오늘날의 전쟁은 세대를 막론하고 터치 한 번이면 전쟁의 참혹과 이기심을 넘치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씁쓸하기만 하다.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해도 전쟁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울프는 작가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예술가는 정치와 무관하다는 이들에게’ 편에서 설득력있게 풀어냈다.
말미에 수록된 두 편의 시 울프의 언니인 바네사의 딸과 아들과 관련된 시로 울프의 비평가적인 면모외에 이면을 마주할 수 있어 좋았다. 독자로서, 이쪽도 저쪽도 닿지 못한 교양속물로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책이었다.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서평단 단체디엠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