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한 작가님으로 부터 손글씨 편지를 받았다. 내게만 보내주신 편지는 아니었지만, 그 편지의 적힌 다음의 문구가 참 좋았다.

이 소설을 읽는 시간이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즐겁고 또 위안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일부 발췌

다수에게 보내신 편지라도 전문을 다 보이고 싶진 않았다. <이상능력자> 작가분의 이 편지는 책을 읽기 전엔 ‘조금이라도 즐겁자’라는 마음이었고, 읽고 난 뒤에는 ‘잘 간직해야지’하는 마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상능력자, 수안이 그리고 예리. 그리고 이 두사람의 곁에 또 한 사람. 이제 막 정식 출간된 소설이니 과한 스포는 자제하면서 서평을 적어본다.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는 아이들이 있다. 폭발과 동시에 그들에게는 ‘이상능력’이 생기고, 문자 그대로 초능력이 아닌 이상능력이라고 명명된 것만 보더라도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수안이의 경우는 이상능력자을 경계하던 사람이었다. 사고로 엄마를 잃은 까닭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폭발할 가능성을 가진 이들을 미리 확인하고 예방할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으니 충분히 두려움을 가질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위험을 가진 사람들임과 동시에 이상능력자들은 사람을 구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능력을 과하게 사용하면 생명도 위험하기 때문에 조절장치를 이식한 까닭에 능력이 있다고 해서 아무데서나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만 보면 마치 편가르기 식의 사회를 빗댄 것처럼 보이지만 대상이 청소년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유사한 내용을 담은 만화와 드라마 그리고 영화도 떠올랐지만 이전 작품들과 이상능력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를 악용하는 세력과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빼앗거나 선을 긋는 역차별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이들을 가로막는 상대가 누구인지, 또 아이들이 받은 상처가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위험성을 낳을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이상능력이 생긴 후 수안이가 느끼는 고민과 갈등 그리고 자신의 아픔이 지나치게 클 때,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볼 수 없는 나약함과 한계까지 살피다보면 어째서 그들이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능력자’가 되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또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게 되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보고자 했던 것을 결국 보고야말겠다는 직간접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배아를 선택할 수 있는 기술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에게 후손에게 어떤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길 바라며 ‘날개가 있는 아이’를 원했다고 한다. 날개가 있다면 위험한 상황을 모면하기엔 좋은 장치가 될 수 있지만 날개가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 속의 그 아이는 우생이 아닌 ‘돌연변이’로 살아가야만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상능력자>의 아이들은 과연 그 능력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까. 아이들이 능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조금이라도 즐거운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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