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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

꿈을 잘 기억하는 왼손잡이였던 나. 당연하게도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집어 들었다. 읽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다. 낯선 작가도 아니고 이미 <국경시장>으로 작가의 매력적인 상상력과 필력은 잘 알고 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목차순으로 읽으려다가 역시나 표제작,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 부터 읽었다. 소설 속 중심인물 우경은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렇게 고단한 하루 끝, 꿈에서나마 떠나는 세계여행은 그녀에게 매일 매일 현실을 살아가게 만드는 ‘꿈같은 순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 악마라고 짐작되는 한 남자가 그녀가 이전에 잘 하던 ‘시소’게임을 제안한다. 고단한 현실을 견디게 해줄 만큼 좋았던 꿈을 삭제하는 대신, 진짜 현실에서 꿈을 차례로 이룰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인데 우경의 입장에선 당장 매일 매일 숨쉬는 것 조차 힘겨우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꿈에서 깬 며칠은 그저 운이 좋은 줄 알았던 그녀가 월셋 방에서 전세로 집을 옮기고 남편과 함께 자리를 잡으면서 진정 거래가 성립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렴 어떠랴. 아침에 나가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 성적이 점점 올라가는 아이들, 주말에 치킨 두 마리를 배달해 저녁으로 먹으면서 우경은 이 행운이 믿기지 않았다. (중략)
“이 정도가 딱 좋아. 이 정도가!” 우경은 누가 듣기라도 하듯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악마와의 계약에 ‘정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106쪽)
그럼 그렇지. 정도가 없는 악마와의 계약이 처음에야 좋았던 꿈이 사라지는 수준이라 좋았지만 점차 현실에서 꿈의 크기가 커질수록 진짜 꿈들은 서서히 악몽으로 변해간다. 기어이 온몸에 단추가 꿰어지는 생각만해도 소름끼치는 악몽에 시달리면서 그녀는 이제 밤이 오는 순간 자체가 끔찍하기만 하다. 분명 현실에서 그녀는 성인이 된 자녀들을 남부럽지 않을 만큼 결혼도 시켰고, 사별한 전남편보다 훨씬 다정한 연하남편과 재혼도 했지만 잠을 잘 수 없는 밤은 이제 낮에도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시소에 현실과 꿈을 올려놓은 뒤 계약을 종료한다. 계약이 종료된 우경의 삶까지 모두 이곳에 적을 순 없으니 사견을 더하자면, 아주 오래 전 이 소설 속 우경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꿈에서 악마가 찾아와 내게 거래를 청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 부터 친할머니와 방을 함께 쓰다가 중학교 때 할머니가 본가로 가시면서 드디어 방을 나 혼자 사용하게 되었다. 새 침대와 새 책상까지 마련해주신 덕분에 하루하루가 ‘꿈 같을 줄’ 알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밤마다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져 엄마가 결국 매일 밤 1시가 지나도록 내 곁에서 함께 해주셨다. 그렇게 3주 정도가 지난 후부터는 괜찮아졌지만 소설 속 우경처럼 그때는 밤이 오는 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우경도, 나도 어쩌면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소설 속 마지막 그 문장을 읽었던 밤, 꿈꾸기가 무서웠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다른 작품들도 엄청 흥미로웠지만 사족이 길어져 다른 단편은 다음 기회에 후기를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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