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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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에게 위안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자는 내 세대에서 끝이다




<남극> 뒷표지에 적힌 위의 두 문장을 읽고 멈칫할 수도 있다. 영화화 되어 키건의 작품을 널리 알려준 <맡겨진 소녀>에서 느꼈던 감성을, 마찬가지로 동명의 영화의 원작이 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 에서 폭력은 덤덤하게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반면 반드시 존재했어야 할 정의가 사라진 곳에 많은 희생이 염려되는 선의에 대해 생각케 했었다. 그런데 <남극>은 표제작 부터가 심상치 않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여성이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떠올린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이 소설을 보며 상황은 다르지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잠시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키 큰 풀숲의 사랑>은 작가의 작품을 왜 계속 찾아 읽게 되는가의 대한 답을 깨달았던 작품이었다.


그들은 가끔 얕은 잠에 빠졌지만 코딜리아는 의사의 손목에서 금시계가 째깍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소리를 항상 의식했다. 째깍, 째깍, 째깍.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그녀는 그 시계가 미웠다. 49쪽


코딜리아는 결혼하여 가정이 있는 의사를 만나고 있었다. 의사와 코딜리아는 서로 좋아했고, 함께 있을 때 그들은 행복했지만 완전한 행복은 아니었다. 위의 발췌문에서 알 수 있듯 그저 흐를 뿐인 시계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할 만큼 코딜리아는 자신의 사랑이 자유롭지도 떳떳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시계를 미워하거나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일으키긴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의사가 코딜리아에게 갈 수 없는 이유가 아이 때문이었을까. 의사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생각해서 가정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아마 아이가 있는 안정된 가정으로 자신이 돌아가고 싶었던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말처럼 여행이란 어쨌거나 불편할 수 밖에 없음에도 떠나는 이유가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이란 말처럼 외도도 그런게 아닐까. 후반부에 등장하는 <폭풍>은 앞서 등장한 작품들의 부분 부분을 이어 받은 느낌이 들었는데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감각에 있어서는 <남극>을 떠올리게 했고,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꿈꾸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분위기는 이전에 읽었던 작품에서 기쁘게 고통스러워 하던 부분이었다. 동시에 다음 차례에서 만나게 될 <화상>을 암시하는 문장도 등장하는데 한참을 그 연결고리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었다.


내가 다 컸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남자는 화상을 입었다. 어머니는 화상처럼 나쁜 건 없다고 항상 말했다. 123쪽


하지만 이런저런 고통과 폭력에서도 잘 버티던 내 손이 페이지 넘기는 것을 멈추게 만든 것은 <여권 수프>를 읽을 때 였다. 잃어버리는 것은 크고 작음과 관계없이 사람을 절망으로 끌어내린다. 역자는 각 작품마다 뇌리에 각인되는 장면들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여권 수프>의 마지막 문장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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