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12월
평점 :
“자, 그렇다면 저처럼 그 사람 책을 전혀 읽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간단히 한말씀 해주신다면,” (…) “오스틴의 소설을 읽는 게 영화를 보는 것보다 낫다는 걸 어떻게 설득하시겠어요?”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아무래도 독서의 장점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겠쬬. 영화에선 감독과 배우들이 대신 생각해주는 게 많잖아요, 그 사람들은 비평가의 견해 같은 것을 분석하고 심지어는 영화에서 그걸 앞세울 때도 있고요. 그러니까 원작을 안 읽으면 남들이 이해한 걸 얻는 걸로 끝이에요. 101쪽
평소에 두께나 분량에 상관없이 한자리에서 읽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루스 윌슨의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는 그런 나의 독서 습관을 완전히 벗어날 수 밖에 없었는데 첫 번째 이유가 책에 언급되는 책을 읽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위의 발췌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그동안 애독가이자 독서지도사로 활동하며 받았던 질문들의 답들을 받아 적고 또 내 것으로 소화하다보니 자연스레 더디게 읽게 되었다. 솔직히 제인 오스틴의 6권의 작품을 토대로 한 이 책을 위한 별도의 명언집이 나와도 무방할 정도다. 그 이유를 아래 발췌문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노력 없이 성숙한 독자가 거저 되진 않겠지. 울프의 말에 독자로서의 내 경험을 보태보자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독자가 성숙해지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는 작품이라 하겠다. 53쪽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의 관해 감상을 공유했을 때 반드시 호응과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유명한 저자의 권위있는 상을 수상한 작품일지라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혹평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작품을 자신의 삶에 빗대어 제대로 볼 수 있는 성숙함을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저자는 오스틴의 소설을 통해 성공적인 재활 치료 후기를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그 너머 애독자든 아니든 혹은 전혀 읽지 않은 독자들마저 오스틴의 소설과 문학 그리고 독서의 효용에 대해 차분하게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뭐니뭐니해도 ‘오만과 편견’을 읽었을 때 얻어지는 것에 집중할 수 밖에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 읽지 않은 <이성과 감성>에 혹하게 되었다. 자녀들의 이야기가 나와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연히 이성과 감성이 대립이 아닌 ‘등위 접속사(246쪽)’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저자처럼’ 문법의 쓸모(같은 쪽)’를 믿는 독자라면 분명 해당 작품에서 보다 많은 위트와 오스틴의 작법에 놀라움을 느꼈을텐데 그렇지 못한 내가 이 책을 먼저 읽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건가.
제인 오스틴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최대한 정확하게 그 말을 하기 위해 자기가 가진 언어 지식을 활용하는 작가이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여기서 이성과 감성은 대비되는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상호 보완적인 양태로 다뤄진다고 보여진다 247쪽
또 작품마다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재독’의 중요성과 기쁨 덕에 작품을 다 읽은 사람과 나처럼 몇몇 작품을 원작과 영화로 또 전혀 읽지 않은 사람까지 각자의 시선에 맞게 읽힌다는 점도 이 책의 강점이다. 무엇보다 독서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나 의구심이 있던 이들도 답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독서가 치유도 되고 치료도 된다는 것을 독서치료 개론보다 훨씬 쉽고 다정하게 쓰여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