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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구직자 - 그리고 소설가 정수정의 화요일 ㅣ 다소 시리즈 5
정수정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평점 :
’연쇄 구직자‘라니. 블랙 유머 같은 제목을 내세운 이 소설은 반복되는 취업 실패를 겪는 경력단절 여성을 통해 문제의 원인이 개인이 아닌 무기력과 체념을 학습시키는 불합리한 직장 문화와 사회 구조에 있음을 드러낸다. _소설가 김의경 추천사 중에서
경력단절.
얼마전 한 독서모임에서 주부를 대상으로 한 독서프로그램을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경력단절‘이란 말 자체가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다가와 오히려 정작 당사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며 해당 용어를 자제하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었다. 그때도 간략하게 의사를 전달하긴 했지만 경력단절이란 말 대신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경력이 중단된 것이 선택의 문제였다면 다른 용어나 애초에 이런 말을 굳이 사용하지 않았겠지만, 자녀가 있거나 기혼이라는 이유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해당 언어를 대신할 만한 다른 말을 찾고 싶지 않았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 보도자료를 한 글자도 쓰지 못하던 때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정작 취직을 하더라도 일을 못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두려워졌다. 이렇게 계속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114쪽
최근 몇 년간 들었던 칭찬보다 손바느질 수업 첫 시간에 들은 칭찬이 더 많은 것 같다. 손바닥만 한 바늘방석을 들고 집에 가면서, 나는 다음 주를 기다렸다. 158쪽
할 줄 아는 건 하나 더 늘었지만 딱히 더 취직하기 좋아진 것 같진 않다. 224쪽
소설 속 지수는 대형 기획사 홍보업무를 맡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그동안 잘 해왔으니 다시 회사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기혼‘이라는 이유로, 때로는 그 모든 것을 견뎌내고 얻은 직장도 남편의 건강문제로 포기하고 만다. 지수는 계속 일어나는 불편한 상황을 ’도망쳤다‘라고 말하지만 그런 자조적인 말들이 그녀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단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사회적 시선이 그녀를 두고 하려는 말을 저자가 먼저 던졌을 뿐이지 않을까. 퇴사한 직후, 퇴사하기 전, 구직활동을 하며 그녀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 바뀔 때 마다 점점 마음이 답답해졌다. 마음이 답답했던 건 지수 때문이 아니라, 결혼 후 내가 지내온 사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나만 남았다. 그토록 많은 걸 시도했는데, 쉬지 않고 뭔가를 해보려 했는데. 부끄럽지는 않지만 조금, 허무하다. 293쪽
멈춘 적이 없더라도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 과정만으로도 인정받기가 어려운 ’활동‘이 구직활동일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가 기혼여성, 자녀가 있는 사람들만 겪는 것은 아니다. 이제 막 퇴사를 하고 애매한 구인광고에 휘둘리는 구직자들이라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한 이 소설은 ’경력단절여성의 시련‘ 만을 다루지 않는다. 가족이 가족이기 때문에 더 힘든 서나의 삶은 또 어떤가. 결혼으로 자신의 상황을 벗어나려는 것을 두고 부정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서 배우자가 될 사람의 부정적인 평을 전하지 않은 지수가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서나가 가족 때문에 받았을 시련을 지수가 시동생과 시어머니와의 단 한차례 등장하는 전화와 만남을 통해 보여주는 대화 장면을 보면 느껴질 것이다. 가족이 때리면 더 아프다는 말. 차라리 진짜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받으면 훨씬 낫지 않을까 싶은 그런 마음.
그저 그 애의 선택을 응원하기로 한다. 나는 항상 그랬다.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던 사람도 있었다. 너네 진짜 친구 맞아? 같은 질문을 가장한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은 이제 나와 서나 곁에 없다. 273쪽
서나와 지수 그리고 소설가 정수정의 글을 마지막까지 다 읽고 든 생각은 ’다소 가까워 지는 우리‘라는 다소 시리즈의 모토였다. 가깝게 느껴졌다. 지수의 모습이 서평에 드러난 것처럼 분명히 내안에 진행형으로 자리하고 있고, 서나에게 주어졌거나 앞으로 견뎌내야 할 삶의 무게를 모르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를 넘어 정수정 작가가 <연쇄 구직자>의 초안을 쓰고, 수십 번의 수정을 거쳐 출판에 이르기 까지의 ’화요일‘들이 내 미래였음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부디 많은 분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가까워’질 다소시리즈, 연쇄 구직자의 만남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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