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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황제
셀마 라겔뢰프 지음, 안종현 옮김 / 다반 / 2025년 10월
평점 :
포르투갈 황제
아이를 교육할 때 부모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교육의 최종 목표는 자립에 있다라는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의 의사표현을 명확히 해야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결국 아이들은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 부모를 떠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떠남 그 자체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다. 여전히 더 챙겨줘야만 할 것 같고 무엇보다 부모에게 아이는 여든이 넘어도 늘 아이다.
그러나 클라라는 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얀은 마치 자신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양 소외감을 느꼈다. 아이의 시선은 선생님을 향해 있었다. 61쪽
클라라가 연한 살이 되던 그해 여름, 두 부녀는 언덕을 넘어 뢰브달라로 향하고 있었다. (...)
얀과 클라라가 과수원에 들어섰을 때, 소녀는 아름답게 자란 사과나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무마다 탐스럽게 잘익은 사과로 가득했다. 87쪽
아이들은 부모들이 자랄 때와 마찬가지로 부모의 손을 놓기 시작하는 순간, 세상과 만날 기회가 점점 늘어난다. 위험해보이고,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처럼 느껴져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다 채울수도, 그래서도 안된다. 하지만 아이의 탄생부터 하나하나 그 아이의 웃음과 눈물로 하루를 채워본 부모들은 자발적이든 그렇지 않든 떠나는 아이들의 두 손을 놓을수가 없다. 아이가 오겠다는 전화 한통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을 부모가 되기 전까진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딸아이가 이렇게 말하더군.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다시 돌아온 거예요. 두 분의 손을 서로 맞잡게 하기 위해서라도 꼭 붙잡고 있으세요. 언젠가 제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예전처럼 두 분의 손을 제가 잡아드릴게요.’“ 128쪽
딸의 연락을 기다리던 아버지 얀은 그리움이 너무나 깊어져 자신만의 세상속에 갇히게 된다. 얀이 그렇게 된 이유는 분명 클라라지만 그것이 클라라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그 간절한 마음은 이해하면서도 아직 내가 오는 날을 기다리는 부모가 계셔서인지 변해버린 얀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는 클라라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다. 황제가 되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행동까지 그리움에 사무친 얀을 읽어내지 않았다면 클라라를 나무라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얀 안델손이야, 좋은 사람이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지만 자넨 딸을 너무 버릇없이 키웠어. 내가 더는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서 그래, 자네가 하루가 멀다하고 여기로 달려와서 딸을 기다리는 꼴을 말야...“ 179쪽
기다리는 부모, 그런 부모가 힘겨운 아이들. 이 둘을 모두 사랑하며 이해하는 부모 중 한 사람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이외에도 ’권력의 관계, 타락의 전조를 알리는 빨간 드레스와 사과, 죽음의 상징성, 호수의 상징성, 에릭 유산의 상징성 등이 그러하다(347쪽).‘ 한 번 읽고 덮기에는 아쉽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의 입장에서 그리고 또 상징을 찾아 토론해보는 독서모임 도서로 추천하고 싶다. #포르투갈황제 #다반 #셀마라겔뢰프 #노벨문학상
북스타그램_우주 @woojoos_story 모집, 다반출판사@davanbook 도서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