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27
에밀리 브론테 지음, 한정훈 옮김 / 별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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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브론테.
11월의 어느 일요일. 오전 10시 부터 15시까지. 꼬박 5시간을 한 자리에 앉아 읽었다. 초반에는 록우드의 거만함과 교만에 어이가 없었고, 작품의 주요 인물인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다소 엉뚱한 면모에 난감해지다가 이들의 자녀들이 태어나 학대받는 장면에서는 읽기 힘들만큼 괴로워졌다. 나도 한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인데 다소 당황스러운 것은 원작 소설 완독은 처음이지만 꽤 오래전 영화화된 폭풍의 언덕을 보았을 땐 이런 부분이 등장했다는 사실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다시 봐야 정확할테지만 분명 그때는 폭풍과 연인들의 엇갈린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매번 책을 읽을 때 마다, 특히 나이의 앞자리가 달라진 상태에서 재독할 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독자의 상황(결혼이나 출산 등)에 따라 전체적인 감상평은 어떨지 몰라도 부분 부분이 달라진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간략한 줄거리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서로 사랑하지만 신분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이유로 캐서린이 다른 안정된 가문의 수려한 외모는 물론 둘의 사연을 알면서도 그녀를 집착아닌 안정된 상태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렇게 각자 안타까운 이별을 받아들이고 잘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폭풍의 언덕’이란 타이틀만 보더라도 이어질 내용이 짐작된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어요. 사람이란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니까요. 온화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들조차 까다로운 사람들보다 조금 덜 이기적일 뿐, 상대방이 자기를 배려하지 않느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들 역시 다른 마음을 품게 되는 법이지요. 156쪽

아내(캐서린)이 다시 돌아온 히스클리프를 열렬하게 환영하는 것 까진 좋았지만 자신과도 친해지길 바라는 것이 못마땅할 뿐 아니라 배려하는 데도 한계란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너그러웠던 에드거의 마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이미 한 번의 발작과 열병을 앓았던 캐서린의 상태와 양쪽 모두의 평화를 바라던(사실 상 불가능하지만)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히스클리프와 에드거는 도저희 원만하게 화해할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만다. 특히 히스클리프는 에드거에 대한 미움도 있지만 캐서린 오빠로 부터 당한 학대(교육과 안정된 거처를 빼앗김)로 그야말로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난 아이를 학대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어. 알아듣겠냐?” 그 악당 놈이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집으며 험학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447쪽

읽으면서 가장 납득이 안되었던 부분이자, 그의 사랑이 결코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없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히스클리프는 그토록 사랑하는 캐서린의 딸을 읽는 것 조차 불쾌할 정도로 학대한다. 심지어 그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감금은 수시로 일어난다. 성인이었던 에드거의 동생에게 가한 폭력도 용납이 안되는 데 이어지는 세 아이의 인생을 모두 망가뜨리려는 그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심각한 학대와 사랑의 배신 때문이라는 이해의 선을 오래전에 넘어섰다.

방금 전에 헤어튼이 사람이 아니라 내 젊은 시절의 화신처럼 느껴졌어. 헤어튼을 보면 심경이 너무나 복잡해져서 제정신으로는 말을 걸 수 없었지. 무엇보다 헤어튼이 캐서린 언쇼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서 끔찍스럽게도 그녀를 연상시키는 거야. 529쪽

다행인지 어쩐지 모르지만 그를 저주하면 세상을 등진 캐서린의 환영은 히스클리프의 복수도 삶의 의지도 모두 끌어내렸다. 그렇게 어이없이 어느 순간 히스클리프가 행했던 폭력은 힘을 잃었고, 헤어튼과 캐서린의 딸 캐시는 드디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적으니 학대와 폭력으로 가득한 이 작품이 왜 고전의 반열에 올랐는지 의아할 수도 있는데 이 책은 출간 당시 여성의 문학의 제대로 자리잡을 수 없었던 환경을 견뎌낸 작품이자 통속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서로 으르렁 거리던 남녀가 사랑에 빠지거나 엄청난 싸움으로 결별할 줄 알았던 연인이 오히려 그 다툼을 통해 더 깊은 사랑으로 빠져들 수 도 있다는 설정을 담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상의 아이들의 위치와 성차별적인 부분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게다가 이야기가 가져야 할 가장 필요한 조건, ’한 번 펼치면 멈출 수 없는 놀라운 필력‘이 느껴졌다. 그러니 5시간을 한 자리에서 다 읽지 않았겠는가. 다시 재독할 마음은 아직은 들지 않지만 나의 아둔함으로 찾지 못한 여러 장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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