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오랫동안
루스 베네딕트 지음, 정미나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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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국화, 둘 다 일본이라는 그림의 일면이다. 11쪽

일본을 떠올렸을 때 ‘모순’이라는 단어와의 연결성이 어렵지 만은 않다. 타인에게 실례가 되는 일은 극도로 조심하면서도 가장 잔혹하고 난폭한 방법으로 영혼을 무너뜨리는 인물들이 정반대의 귀여운 작화로 표현하는 애니를 볼 때마다 느낀다. 겉으로는 상냥하게 미소조차 삼가하면서도 속으로는 벼린 칼을 품고 있을 지 모른다. 이런 추측뿐인 개인적 의심을 넘어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바라본 일본의 모습이 바로 ‘국화와 칼’이다. 연구가 시작된 배경은 전쟁 중 일본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군사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에서는 수백년에 걸쳐 불평등이 조직화된 생활 원리로 이어지면서 이제는 그 원리가 가장 일상적이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생활 원리로 굳어져 있었다. 계층적 위계질서를 인정하는 행동은 그들에겐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65쪽

계층적으로 억압된 삶을 살아온 일본은 평민에게는 성씨 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이런 불평등이 자국 내의 항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체화되어 주변국을 포함 해 전세계의 위계질서를 만들어내야 하는 명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저자는 일본이 중국과는 달리 씨족사회에 대한 위계보다는 가족구성원 특히 장자에게 주어지는 기대와 책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런 부분은 한국에서도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해도 유사한 문화권에서 성장하고 살아온 세대가 존재하는 한 완벽하게 벗어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얼마전 읽었던 성석제의 <투명 인간>의 만수만 하더라도 장자라는 역할에 부응하다보니 어느새 자신은 ‘투명 인간’이 되어버린 것도 깨닫지 못한다.

일본어의 황실 명칭은 ‘구름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며 이 황족들만이 일왕이 될 수 있다. (…)
일왕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였다. 77쪽

천황에 대한 일본인들의 믿음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중국으로 부터 관직 제도와 법령등을 도입하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반란과 내란으로 왕위가 바뀐 중국과 일본은 큰 차이점을 가진다. 일본에서도 당연 농민들이 지주의 부당함에 대응하긴 하였지만 어찌되었든 법의 심판으로 처형을 받는 것 자체에는 결코 항의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긴 했다. 그런점에서 쇄국에서 벗어나 서양 영역권의 나라들과 협상하고 그 어느 나라보다 문물을 개방하게 된 훗날의 일본의 모습을 예상하기란 어려웠다.

메이지 정부의 정치가들은 종교 분야에서도 정부 형태와 마찬가지로 무척 괴이한 공식 체계를 만들었다.(..)
국민의 결속과 우월성의 상징을 받드는 종교를 국가 관할로 삼고, 그 외의 모든 종교 숭배는 개인적 자유로 내버려두었다. 국가의 관활로 삼은 종교가 바로 국가신토이다. 110쪽

국가신토는 짐작한 것처럼 일왕의 숭배와 이에 대한 가르침이다. 종교가 아니라고 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국가신토만이 일본의 유일한 종교라고 느껴졌다.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타국과의 협정에서 위배될 만한 것도 없었고 제재할 명분도 없었다.

그들에게 ‘일왕’이 존재한다는 것, 그로인해 당연히 발생하는 계층적 위계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래로 이어지는 가족 관계와 개인 관계에서의 역할과 행동이 중요해질 수 밖에 없고 그것은 위급상황에서 그 어떤 것보다 유대관계를 깊어졌다. 일본의 바람대로 전 세계가 ‘적절한 자리’에  놓였다면 어땠을지 아찔하다.

일본의 진정한 국민적 서사극은 <47인의 사무라이>다. 이것은 세계 문학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영향력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49쪽

책을 읽으면서 일본이 어떻게 전세계를 계층화 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 그 근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에 대한 신의와 사무라이가 가지는 특권의 당연함을 넘어 그들이 가진 의무와 바람 사이에서 그들이 결국 선택하게되는 강인함이 서양인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또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느 한 나라를 그리고 그 나라의 국민성을 한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는 것은 당연히 무리고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파고들지 못했던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이책이 왜 오래도록 기억되고 이어져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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