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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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적어본다.



소년이 온다.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그 날 이라는게 어느 곳, 어느 때인지 너무 잘 알아서 차마 읽을 수 없었던 책이다. 소설이라서, 정말 소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책에서도 등장하는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그렇게 건조한 시선으로 볼 수 있었던게 다행일까, 그만큼의 비겁함이었을까.



광주. 5.18. 계엄군과 대치했던 도청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소년과 소년 못지 않게 어리고 여린 삶들이 있었다. 총과 칼이 살상무기이기 보다는 두려운 마음을 서로가 서로에게 덮어주려는 담요와 같았다고 느꼈다. 소년은 그렇게 2024년 12월 내게로 왔다.


소년은 빛으로 가야한다. 빛으로 데려가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이고, 희생이었다며 혹은 문학 그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며 주변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 좋을까. 차마 권할 수 없었다. 그 사건을 한 줄의 문장 정도로 알고 있는 여린이들에게 차마 권할 수가 없었다. 오래전 아직 만 스무 살이 되기 전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책에서 묘사했던 참혹하고 너무 잔인해 3초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던 사진 그날의 사진 한장. 성별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군홧발에 뭉개져버렸던 그날 그곳에 있었던 누군가의 ‘얼굴’.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혼들의 움직임이었다. 서로를 부를 수도 없고 서로가 서로인지 알아볼 수도 없지만 곁을 내어주고, 잠시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식을 잃고 잘 견디는듯 하다가 조금씩, 천천히 무너져가는 어미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만약에’, ‘억지로라도’그럴 수 있었다면, 소년은 잘 살아갈 수 있었을까. 살아도 살아 있는게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숨이라도 붙어있길 바라는 그 마음을 생각할수록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보다 살아남아 수천번을 되뇌이고 되뇌이는 이들의 영혼들이 더 안타깝게 남았다. ‘왜 나는 살아있는가.’


책을 다 읽고 난 후 문득 죄 짓지 않고 살기보다 누군가의 도움이나 누군가에게 빚을 지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더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1980년 그 해 여름. 살아남은 모두는 누군가에게 적게든 많게든 빚을 진거라고. 그래서 그 빚을 갚는 방법이란게 결국 그들을 빛으로 이끄는 것이니 서두에 던진 내 임무를 다시 상기시킨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빛으로 이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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