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떤 사람이야?윤주는 대답했다.나는 타인에게 중력을 내어주는 사람이야.31쪽중력을 내어주는 사람. 저자는 이 말을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시기에 들었을 때, ‘틀렸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꽤 초반에 이 대화가 등장하는데 이 책이 전하는 다정함, 저자가 이제껏 하지 않았던 솔직한 이야기들은 어쩌면 ‘중력을 내어주는 것‘ 자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헌책이나 음향기기는 나 또한 중고서점을 빈번하게 드나들지만 옷만큼은 내키지 않았다. 시인은 그럼 헌옷의 주인들이 지나쳐왔을 불쾌한 상황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하나하나가 겹쳐지고 포개어진 서사였다. 그래서 시인인가. 그래서 슬픈 그 마음을 더한 분노나 혼자서 삭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글로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시인은 그야말로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란 생각도 든다. 다소 경외에 가까운 감정이 밀려오다 부모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어쩔 수 없이 시인과 독자의 관계가 아니라 ‘누군가의 딸‘의 심정이 되고 만다. 꽤 오래전 깨를 털어야 한다길래 뭣도 모르고 돕겠다고 부모님댁에 내려간 적이 있다. 앞으로 더 얼마나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 지 모르지만 출산과 신생아 양육보다 더 힘든 것이 깨털기와 깻단 묶기라고 생각한다. 반성문 쓰기에 이어 블루베리를 수확하며 저자가 섬세하게 헤아리는 것과는 달리 난 그때나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이따금 그 이야기를 꺼내며 당부에 당부를 더한다. 그래서 부모님 이야기가 등장할 때 마다 혼자 부끄러웠다. 다시 저자 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 싶었던 ‘문진‘을 사랑하는 이유. 생각해보니 난 문진을 사랑한다기 보다 책의 굿즈가 문진이면 일단 사고보는 편이다. 다행인 것은 책 내용에 실망할 때 보다 문진이 아니었음 읽지 않았을 보물같은 책을 만나게 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문진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토록 아름답기‘ 때문이다.한 사물이 지닌 특별함에 발을 들이자 순식간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는 작은 구 안에 그토록 다채로운 세계가 들어설 수 있다는 데 압도됐다. 137쪽최근에 소장하게 된 문진은 물고기 두 마리가 들어있는 것으로, 우메다 테츠야의 <물에 관한 산책>에 등장하는 작품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문진에서는 물소리가 나지 않지만 그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들리지 않는 물소리가 들리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나 역시 문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충동을 종종 느끼는데 예쁜 꽃들을 담아보고 싶을 때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간단하게 레진을 이용해 만들 생각만 했는데 저자는 공방에 까지 가서 구워보기도 했다는 말에 초반에 역시 ‘시인‘은 다르구나 싶었다. 청을 담그거나 요리를 할 때의 묘사들도 장면 장면이 유사한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해 마음이 뭉글해졌다. 아마 겨울이라 더 그 풍경들이 따뜻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이야기 하나하나 내 이야기를 연결지어 리뷰를 쓰자면 끝이 없지만 꼭 한 번 이 책을 읽고 감상과 추억을 소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패키지 여행중 만났던 가이드 이야기라던가 그림을 그리면서 부딪혔던 상념들을 나누고 싶은 사람. 그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그렇게 나도 시인에게 다정의 온도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