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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 - 진짜와 허상에 관하여
에밀리 부틀 지음, 이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1월
평점 :
진정성은 본래 자유를 추구하는데, 그것이 하나의 교리가 될 때 오히려 자유를 빼앗는다는 것이 바로 진정성의 역설이다. 우리가 '자신의 진실에 따라'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좋은 일이겠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개념에 나는 이의를 제기한다. 15쪽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각자의 답변이 다 있을 것이고, 그 답변이 틀리진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 진정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저자처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좋지 않은 쪽으로. 에밀리 부틀의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를 읽기 전 후의 내가 바라보는 진정성에 대한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에게 '진정성을 가지고'란 표현을 이전만큼은 자주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 왜냐면 진정성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의 진정성을 의심하거나 상대의 진정성을 의심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어스킨은 셀럽과 영웅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그것을 가짜 우상과 진짜 우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단순한 이분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멋진 글을 썼다. '우리는 셀럽을 만들 수 있으나 영웅은 결코 만들 수 없다. (...) '영웅은 그들의 업적으로, 셀럽은 그들의 이미지나 상표로 식별된다. 영웅은 자신을 창조하지만 셀럽은 미디어에 의해 창조된다. 영웅은 큰 사람이고, 셀럽은 큰 이름이다.' 57쪽
셀럽과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가 많이 등장한 이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젠 셀럽들의 영향력을 알게 된다. 그들이 누군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살까 말까 고민하는 제품을 무료로 사용하는 건 당연하고 거액을 받으며 활동하는 것을 알고 난 후 이런 직업이 탄생할거라는 것을 가장 빨리 예견한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어쨌거나 셀럽과 영웅의 비교를 보고 다 동의할 수만은 없었다. 저자 역시 더이상 그의 말이 맞지 않다고 인정하는 데 과연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 지, 영웅들도 동의할 지는 알 수 없다.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할 권리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자전적 소설'이라는 꼬리표 혹은 온라인 기사에 붙는 '사적인 에세이'라는 수식어는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안전망을 제공하며, 작가가 타인의 문화나 정체성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하는 실수는 없을 거라고 보장한다. 77쪽
얼마 전 동료와 소설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전적 소설'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적이 있다. 내게 자전적 이란 표현은 '안전망'이었지만 동료에게는 '진정성'이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겪은 소설가들은 '자전적 소설'이란 표현을 그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안전망이 결코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작은 의심조차 검열에 의해 작품은 물론 삶 자체가 소멸할 수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두에 밝힌 것처럼 진정성이란 의미는 그렇게 시대에 변화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한번 더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정체성과 진정성을 비교하는 파트로 흥미롭게 이어진다. (물론 본문에는 두 파트 사이에 제품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초반 셀럽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생략한다)
에릭슨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정체성이 진정성과 어떻게 서로 충돌하고 또 의존하는지 알 수 있다. 사회적 정체성은, 스튜어트 홀이 표현한 것처럼 "집단적인 "하나의 진정한 자아"다. 에릭슨이 둘 중 어느 범주에도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30쪽
'정체성의 혼란'이란 표현을 종종 쓰긴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내가 혼란스러웠던 것이 '정체성'이었는지, '진정성'이었는지 가만 생각해보니 후자였던 것 같다. 내가 혼자 고독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를 무기로 공격성을 내보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예로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 투표' 상황을 가져왔고, 이를 찬성했던 사람들이 그려보았던 영국성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옳은 선택이 아닐지언정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어쩌면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잊기 위해서 그 여정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진정성이 추상적인 목표라는 사실마저 외면하고 나면 우리에겐 단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어떻게 그곳에 도달할 것인가? 162쪽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을 읽기 전 후로 달라진 게 하나있다면 '진정성의 언급 빈도'일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진정성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각 분야별로 나누어 그런 노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집착'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런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런 상황들이 무엇인지 아는 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그 답을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