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숙과의 대화 - 우주의 끝에 다다르려는 작곡가의 온평생
진은숙 지음, 이희경 엮음 / 을유문화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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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트 쇤베르크상 수상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진은숙 작곡가는, 알면 알수록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작곡가‘라는 직함을 잠시 옆으로 두고, 진은숙이라는 사람의 매력에 빠지게 된 건, 그녀가 서울시립교양악단 상임 작곡가로 부임한 후 국내에서 출간된 한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그 책과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책 모두 동일한 음악학자 이희경의 손을 거쳤고, 두 책을 동시에 읽다 보니 그 재미가 배가 되었다. 또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어느 시인의 죽음을 읽으면서, 파스테르나크가 음악에 매료되어 음악이 운명처럼 느껴졌다는 이야기가 진은숙 작곡가에게도 동일하게 있었다는 점에서, 여러 권을 동시에 읽으면서 진정으로 즐겁고 신이 났다.

진은숙 작곡가의 첫 번째 책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화가 주를 이뤘다면, 이번 책 진은숙과의 대화에서는 김상욱 물리학자와의 대담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천문학과 물리학에 빠져드는 작곡가라니, 앞서 언급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이라는 표현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가 던지는 질문들을 읽으면서,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도 이와 같은 분위기를 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아인슈타인이 논쟁하다가 ‘저 달이 내가 안 쳐다보면 없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했잖아요. 그런 질문에 대해 저도 생각해 봤고, 학자들의 얘기도 들어봤는데, 내가 안 쳐다보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쳐다보고 있고... 만약 그 달을 바라보는 인간의 의식, 그걸 인식하는 존재가 없다면, 그럴 때도 그것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면 결국 그 ‘존재‘라는 걸 어떻게 정의해야 하냐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은숙고의 대화, 95쪽)

이 질문은 단순히 물리학적 사고를 넘어서, 존재론과 인간 인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음악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연의 원리나 인간의 의식을 탐구하는 철학적 질문을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작업은 단순한 음악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 분명했다.

또한, 한 작곡가와의 방송 인터뷰에서 그녀는 ‘작곡하는 방식‘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최근에는 하루키의 작업 루틴이 자주 화제가 되지만, 진은숙 작곡가는 규칙적인 일상보다는 ‘음악과 관련된 삶을 산 날이 단 하루도 없다‘는 말로 자신의 작업 방식을 설명했다. 그녀는 항상 음악을 생각하고, 그 과정이 반드시 규칙적이고 시간에 맞춰진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녀가 작곡할 때 흔히 보여지는 컴퓨터나 키보드를 사용한 작업 방식이 아니라, 수기로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는 점도 흥미로웠다. 띠지에 실린 2007년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페라 리허설 중 메모를 하고 있는 사진(169쪽)을 보면, 그녀의 작업 방식에 대한 또 다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진은숙 작곡가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명의 예술가의 삶을 넘어, 그가 겪은 고난과 자부심은 물론 자신의 작품으로 스스로 폐기해왔다는 점을 밝히는 등 그녀의 단호함까지 엿볼 수 있었다.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또 그렇게 학생들에게 말하면서도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왜 여전히 ‘시들지 않는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예로 든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처럼 80대에도 현역 작곡가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진지함이 그녀의 명성을 더욱 빛나게 한다. 책 곳곳에 담긴 QR코드를 통해 그녀의 작품을 듣고, 그녀가 극찬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도 감상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눈과 귀가 호강하는 경험이었다.

진은숙 작곡가는 한 어머니이자 아내로서의 삶을 병행하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낸 예술가로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그녀가 여성으로서의 한정된 프레임을 넘어서서, ‘작곡가‘라는 직업의 깊이와 무게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존경을 표한다. 앞으로 그녀의 작품, 특히 달의 어두운 면이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되며, 이미 그 작품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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