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우맨 암실문고
마틴 맥도나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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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소설  눈물을 흘린 유일한 작품이다.



아이들이 자살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쁨과 슬픔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미래가 끔찍하게 고통스럽다면 자살까진 아니더라도 그 괴로움에 잠식 당하게 될 것이다. 단테의 말처럼 지옥은 희망이 없는 것을 뜻하고, 사람이 좌절하게 되는 이유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아니라 달라지지 않을거라는 예감 때문이기 때문이다. 필로우맨은 고통스런 삶을 살다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을 하게 되는 사람들의 어린시절로 돌아가 그들의 미래가 어떠한지를 말해주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필로우보이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필로우보이는 대답했어. '괜찮아. 우리 엄마한테 오늘 밤엔 내가 차를 마시지 못할 거라고 말해 줘.' 필로우맨은 '그래, 그럴게.'라고 말했지만, 거짓말이었어. 95쪽


마치 그 아이들이 죽음 문턱에 들어섰을 때 정말 죽을 줄은 몰랐다거나, 시덥잖은 농담이었다며 비웃을 것 같은 분위기지만 필로우맨은 그런 자신의 일이 슬프기만 하다. 액자구성으로 필로우맨은 소설가 카투리안의 여러 작품 중 하나이며, 카투리안을 취조하는 수사관 투폴스키가 그나마 괜찮은 작품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카투리안의 혐의는 살인이다. 그것도 아동 살인. 그는 형 마이클과 함께 붙잡혀 와있고, 투폴스키와 아리엘 형사는 카투리안이 쓴 소설들에서 단서를 찾아가며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심문하는 내용과 카투리안의 소설이 읽히는 동안 그 모습이 연극무대에서 관객에게 보여지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네 사람은 수사관과 살인범이라는 극과 극의 위치에서 만났지만 모두 폭력적인 아버지를 두었고, 이들 중 몇몇은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폭력성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로 어른이 되었다. 그들이 받은 당한 학대는 텍스트로 읽기만 해도 괴롭고 안타깝다. 안타깝다는 표현이 맞기는 한 걸까.


그 페인트는 절대로 씻겨 없어지지 않고 절대로 다른 색으로 덧칠할 수도 없었으니까. 126쪽


소설은 얼핏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한 사이코패스 형제 이야기거나 조건화된 반응과 실험이었던 '어린 앨버트 실험' 떠올리게 만들었다. 동물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앨버트(가명)에게 무서운 소리를 동물과 함께 보여주는 실험으로 당시에는 아니였지만 당연하게도 지금 이와 같은 실험을 누군가 시도한다면 그것은 실험이 아닌 그저 학대일 뿐이다. 마치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던 실험과 달리 소설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중간 까지는 작가의 천재성에 놀라며 읽었다. 고통스러운 장면 묘사보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필로우맨 외에 다른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결말을 반드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소설이다. 중간까지 읽거나, 일부만 읽어도 작가의 필력에 감탄은 해도 책은 부디 끝까지 페이지도 놓치지 말고 읽길 바란다. 아니 그럴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위에 문장처럼 눈물이 흐를지도 모른다. 학대당한 경험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없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반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기에 눈물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토록 아픈 스릴러라니, 작가의 다른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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