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곰종이 서로 매우 다른데도 불구하고 현재 곰 여덟 종은 모두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을 고유하고 있다.
함께 곤경에 빠져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기후위기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북극곰은 삶의 터전을 잃기 시작했고, 결국 멸종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어릴 때 부터 동물원에 갈 때면 북극곰 만큼은 내 손으로 카메라에 담아오던 내게는 끼니를 거를 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멸종위기의 곰이 북극곰만은 아니었다. 남은 종들을 포함 해 그 수가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된 미국흑곰과 대왕판다 외에는 다른 여섯 종 모두가 위험에 처한 상황이었다. 책 제목을 그림책이나 어린이 동화에서 봤더라면 귀여운 여덟마리의 새끼곰의 재롱이었겠지만 이 책은 안타깝게도 저자가 긴 시간 만나거나 만남을 가지려했던 곰들의 진짜 이야기가 담겨있다. 처음 그가 곰의 생태를 조사하기로 맘먹었던 계기는 기후위기라기 보다는 인간과의 공존이 쉽지 않은 흑곰의 이야기였고, 그 결과는 '사살'이라는 잔인한 결론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근처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이유였다. 물론 곰들의 습격으로 생명을 잃은 사건들도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점에서 무조건 곰을 보호하자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말처럼 '돌보미'라는 인간의 협조가 가능했던 것도 지금껏 곰에게서 우리가 가지는 상징이나 이미지가 '테디 베어'와 같은 귀염성과 인간과 유사하다는 의견(결론만 보자면 틀렸지만)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것도 부정할 순 없다. 실사영화로까지 제작된 안경곰 '패딩턴'만 보더라도 테디 베어와 함께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왜 대왕판다를 귀여워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걸까? 187쪽
캐릭터화 되어 인기가 있는 곰이 아니라 종 자체가 인간에게 사랑을 받는 대왕판다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최근 특정 판다의 인기가 한국에서는 첨언 할 필요없이 굉장하다. 각종 굿즈에 책까지 엄청난 인기를 끄는 판다의 검은 얼룩은 '포식자를 속이려는 방어용 위장의 일부(같은 쪽)'지만 판다를 친근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다른 곰과와 달리 공격성이 거의 없다는 점과 나라의 수장이 친교를 위해 선물하는 '판다 외교'에 멸종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인공 사육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안전하다고만 볼 수 없다. 그런가하면 최근 국내 언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반달가슴곰은 '웅담' 이 특효약으로 알려지면서 다른 어떤 종보다 인간의 잔인함을 겪은 불운의 곰이기도 하다.
"기자님이나 제가 6개월 동안 겨울잠을 잔다면 몸에 남아 있는 게 많이 없을 겁니다." 담즙 내 우르소데옥시콜산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스티어가 설명했다. 우리의 근육은 쇠약해질 것이고,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쯤이면 뇌손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곰은 겨울잠에 들어갈 때 우르소데옥시콜산 수치가 그 증가분이 10퍼센트가 넘도록 치솟는다. 213쪽
긴 시간 겨울잠을 잘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신비롭고 놀라운 부분이다. 물론 모든 곰이 겨울잠은 자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또 이 좋은 성분을 반드시 곰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법이 개정되어 곰 샤육 금지법이 생겨나 이전보다는 곰 사육 산업이 저물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챕터에서 다음의 문장을 보고 다시 절망하고 말았다.
북극곰은 이번 세기말을 넘겨 살아남을 가능성이 매우 적다. 383쪽
전반적으로 다큐를 보는 것처럼 내용과 별개로 흥미진진하게 읽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북극곰의 참담한 현실은 이 책이 널리 읽혀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처럼 곰의 멸종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지만 동시에 곰의 멸종을 걱정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다. 특히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곰을 비롯 야생동물과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 맘에 들었다. 책의 첫 장에 담긴 추천인들의 추천사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