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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업 캐피털리즘 - 시장급진주의자가 꿈꾸는 민주주의 없는 세계 ㅣ Philos 시리즈 30
퀸 슬로보디언 지음, 김승우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805/pimg_7994771444385349.jpg)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구의 표면은 이미 다들 분할되었다. 새로운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기존 국가들로부터 땅을 빼앗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51쪽
자유지상주의란 무엇일까. 민주주의를 넘어 경제적 자유를 더해 무정부주의와 일치하진 않지만 저자가 소개해주는 구역(국가 혹은 특정 지역)을 보면 무정부주의라기 보다는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보다 우선시하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1부, 섬들 편에서 등장하는 홍콩과 런던 그리고 싱가폴에 이를때까지만 해도 '재미있다'정도는 아니었다. 2부, 부족들, 특히 리히텐슈타인의 매력이 '현금으로 나라를 구매한 그 기원에서 찾을 수 있다'(198쪽)를 읽기 시작하면서 서두에 밝힌 자유지상주의가 어떻게 권력을 쥐고 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부터가 논핀셕이 아닌 픽션처럼 다가왔다.
책에 실린 1789년경 유럽 정치체의 모자이크 삽화를 보면 리히텐슈타인의 크기는 인쇄할 당시 실수로 착각할 정도로 스위스 인근의 작은 점에 불과하다. 군주제의 나라로 재벌이나 경제관련 드라마에서 자주 마주하던 '페이퍼컴퍼니'의 거점이자 조세회피처로서의 역할을 다진 곳이기도 하다. 첩보물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군부조직들의 자금까지 자유로이 이동되는 곳이지만 의외로 자금이 사람, 시민에게는 철저하게 닫는 등 1984년까지 여성에게는 참정권도 주지 않았다는 점이 더 극적이었다. 그런가하면 소말리아의 상황은 더 기이하다.
소말리아는 몇몇이 "정부 없는 통치"라고 보르는 상황을 사람들이 어떻게 적응하는 지를 보여 주는 장소가 되었다. 238쪽
영화 <모가디슈>를 통해 전쟁이란 단어가 그렇게 쉽게 도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를 보긴 했지만 여전히 소말리아의 모습은 특정 경제구역의 성공보다는 폭력이 난무하는 부정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를 여러가지 이유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시민들에게 보장되지 않은 많은 사항 중 교육이 포함되어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두바이'와의 연결과정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마저 들었다.
1938년 어느 언론인이 말하길, "한 나라로 볼 때 리히텐슈타인은 독립국가라 하기에는 너무 작다. 하지만 국부로 본다면 매우 크고, 실질적으로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 중 그 규모가 가장 크다. 201쪽
두바이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본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돈을 가진 사람에겐 천국이지만 셀 수 없을 정도의 자본을 가진 권력자가 세운 규정의 엄중함도 느끼게 된다. 두바이는 그야말로 자본으로 계급을 포함한 모든 것을 정해놓은 구역이었다.
의결권을 가진 주식은 두바이에서 경매를 통해 판매될 것이다. 내부 반란은 용납되지 않고 정치 혹은 미권의 자유 또한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266쪽
책의 결론에 이르러 초반에서 언급했던 내용이 이어지면서 내가 들었던 생각은 분명 나는 시장급진주의자가 될 수 있을 만큼의 자본은 결코 가질 수 없지만 동시에 그들이 자본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포함한 국가의 역할과 보장마저 무색하게 만들정도의 저임금으로 고통받고 있지 않음을 여실히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서우리만큼 극적인 이 상황들을 때때로 웃으면서 받아들일 순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역자의 말처럼 이런 내용들을 북한의 나선특수경제구역으로 가져야 바라보자면 자세를 고쳐앉을 수 밖에 없다. 주요 내용인 1부와 결론을 후기에선 언급하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니 한국어판 서문과 역자 해제까지 알차게 담아낸 책을 직접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