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을 걷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1
김솔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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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핀 시리즈 51번, 김 솔 작가의 행간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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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나는 둘로 나뉘었다. 오른쪽 절반은 더 이상 내가 아니고 왼쪽 절반에만 겨우 내가 남았다. 9쪽

마음이 산란할 때는 책을 읽는다. 내가 아닌 작품 속 ‘나’의 상황과 감정이 쉽게 내게 옮겨와 실재하는 ‘나’를 저리로 잠시나마 떼어놓을 수 있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이라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행간을 걷는 ‘나와 너로 쪼개진 남자’가 계속 머물고 있다. 그는 악인인가, 아니면 그저 죄인일 뿐인가.

•인간에게 공기가 보이지 않듯 물고기는 물을 볼 수 없다지만, 인간과 물고기는 서로를 쳐다보며 상대의 생존 조건을 분명하게 인지한다. 그러니 인간과 물고기는 한 생애에서 결코 화합할 수 없다고 그녀의 투명한 표정이 너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111쪽

카롤린은 죽었고 쉥거는 그녀의 영혼을 피해 부모와 고향을 버렸다. 나와 너로 분리된 남자가 정말 쉥거 자신인지, 그저 쉥거의 그림자에서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또다른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죽어가던 순간에도 남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는다. 금고주인 외에는 아무도 열 수 없는 금고를 만들 줄 알았던 사장과 함께 일해온 수십년동안 남자는 비밀의 무게와 기능을 너무 잘 알았기에 마비로 기능을 상실해버린 반쪽 육신에게조차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산책을 하면 수명을 조금 늘릴 수 있을거란 의사의 말을 듣고 하천을 걷기 시작하면서 시작되는 남자의 나레이션은 국가의 무능을 탓하는 듯 하다가도 정치인들의 빤한 거짓말들을 비웃는 것 같기도하다. 여기가 아닌 다른곳에서 벌어진 일들인데 낯설지 않아 더 낯설다. 소설인데 픽션이 아닌 논픽션같다. 너와 나로 쪼개진 남자가 자신이 아닌 다른 애인을 만나러다니는 아내의 행동을 알면서도 복수든 자비든 저 혼자 마음먹고 변심하는 모양새가 우매한 대중과 똑 닮았다.

마비가 된 육신을 끌고서 산책하는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사고가 마비된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죄가 많은 내 삶을 더 잘알아서일까. 나와 너로 스스로를 분리한 채 책을 읽다보니 내 안에 살아있는 쉥거도, 그의 아내도 혹은 카롤린으로 재연된 또다른 이들도 모구 내 안에서 같이 살아숨쉰다. 무엇이든 혹은 어디든 닿고 싶다면 우선은 살아있어야 한다는 ‘나’의 말에 방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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