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 완벽하지 않아 완전한 삶에 대하여
마리나 반 주일렌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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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만하면 괜찮다'는 말이 더 이상 푸대접 받지 않기를 바란다. 이 말은 우리에게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며 우리가 자기비하에 빠지지 않게 해준다. 그러면 우리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경험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8-9쪽


불가능할 것 같은 기록이나 업적을 남기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듣다보면 '그만하면 괜찮다'가 아니라 '끝까지 한다'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어느정도 선에서 만족하는 것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삶의 목표 혹은 행복의 기준이 다 같지 않은 것처럼 삶을 살아가는 방법 또 그만큼 다양할 것이다. 책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는 그런점에서 읽기에 편했다. 출산 이후 이전보다 더 열정적이어야만 할 것 같고, 슈퍼맘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책들과 영상속에서 꽤 긴 시간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았다. 번아웃, 건강 악화가 그 결과였다. 물론 표면적으로 내보일 만한 무언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건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아니란 걸 알았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성공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람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33쪽

한참 자기개발서에 몰두하며 금전적으로 보장된 삶만이 성공이라고 믿었던 시절에는 타인에게 부러움을 살 만한 일들은 무조건 SNS에 공개하고 싶었다. 지인들 중 귀하고 탐나는 부분이 있으면 왜 드러내놓고 알리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은 안다. 누군가 인정해주는 삶에 기대게 되는 순간, 그 삶은 평가대위에 올라가는 것이리라.

인간이란 함께한 짦은 순간들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존재다. 우리가 타인의 삶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미미한지를 생각해보면 겸허한 마음이 들면서도 막막한 기분이 든다. 114쪽

자폐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서 저자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부분들과 그 부모들의 애환에 울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전에 읽었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김승섭, 동아시아)를 읽었을 때 나의 마음도 그랬다. 마사 누스바움의 <동물을 위한 정의>를 읽을 때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자가 언급한 텍스트 사이사이로 알거나 몰랐던 내용들이 섞여가며 마음속에 동심원을 이룬다. 여전한 내적 동일시에 대한 고백을 주저했던 부분에서는 부끄러움도 느꼈다.

대수롭지 않은 삶을 조명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다. 소설은 존재와 무존재 사이에 놓인 경계 위에 무엇이 서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익명이나 가명으로 글을 쓴 여성들을 향한 버지니아 울프의 그 유명한 문장("작자 미상으로 나온 수많은 시를 쓴 익명의 작가들 중 꽤 많은 수가 여성일 것이다")은 여성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로 치환되어 보다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197쪽

도서관에 가면 평생교육 프로그램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다양한 독후활동들의 결과물인 문집들을 찾아서 읽어보곤 한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보다 울림이 큰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작가와 내가 비등단 문인이라는 '평범함'에서 오는 동료애가 느껴져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인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익명이나 가명의 글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그렇게 잠시 들뜨다 소멸된다는 점에서는 익명이나 가명과는 다른 의미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는다. 체호프의 글이 근래 더 좋아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평범함 속 비범함을 잘 아는 작가이기 떄문인지도 모른다.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가 발췌문을 바라본다. '그만하면 괜찮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을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평범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함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어쩌면 누군가의 '그만하면 괜찮다'는 어떤 의미에서든 그다지 바람직한 표현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내 스스로,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나를 기준으로 하는 말이라면 그 어떤 말보다 마음의 위로와 위안이 된다. 그런 삶들이, 그런 평범한 삶이야 말로 찬란한 삶이지 않을까 싶다. 밑줄긋느라 다 읽고나니 새 책이 헌책처럼 되어버렸지만 곁에 두고 읽을 수 있으니 이또한 이만하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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