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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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고닉 #끝나지않은일 #글항아리

책 읽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 가끔은 내가 날 때부터 책을 읽은 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세상일을 까맣게 잊은 채 손에 책을 들고 있지 않았던 시간은 기억에 없다. - 책 본문 중에서-

어른이 되어 자기소개서를 비롯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독서'라는 키워드가 빠졌던 적은 없었다. 고리타분하게 보일테지만 실제 내 삶에 책은 항상 있었고, 특히 문학의 경우 모든 것이 자리를 잃고 방황하던 때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비언 고닉의 <끝나지 않은 일>은 읽기에 관한 책이다. 그것도 '다시 읽기'. 고전은 시대를 달리하더라도 항상 갖가지 이유로, 판형의 변화, 새 역자를 만나 거듭 출판되어 우리를 찾아온다. 주변에 가까운 지인은 문학 뿐아니라 자기개발서인데도 초판본의 번역이 훨씬 동기유발에 효과적이라며 새 책 대신 도서관에서 대여하거나 중고서점을 기웃거린다. 역자의 역할도 당연 중요하지만 정작 책을 읽는 독자의 연령과 주변환경의 변화는 또 얼마나 다른 감상의 책 읽기가 가능한가.

내 경험으론, 인생 초년에 중요했던 책을 다시 읽다보면 긴 의자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꽤 있다. 다년간 마음에 품었던 서사가 느닷없이 불려 나오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심각한 의문점들을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본문 중에서-

고입을 앞두고 예비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국내외 잘 알려진 단편소설집을 여러 권 읽었었다. 아마 내가 읽은 고전에 절반 이상이 그 때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작품들을 다시 마주할 때면 책을 읽어야 할 '때'가 분명 있음을 느낀다. 그 시절 그렇게 읽었다고, 내용을 대충 알고 있다고 다시 읽지 않았더라면 작품의 진가를 평생 모르고 살았겠구나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때 적어두었던 서평노트를 제출할 때 별도의 사본을 보관하지 않은 것이 속상할 정도다. 물론 그때는 서평이라기 보다는 줄거리 요약에 한 두 줄 정도의 감상이 달린 수준이었을테지만 <끝나지 않은 일>을 읽을수록 이전에 적었던 글, 읽었던 책들을 다시금 꺼내어 보는 것이 단순히 과거에 집착하거나 매달리는 것이 아닌 다른 차원의 새로운 경험과 자기인식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대체 누구십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

"잘 모르겠네요. 제가 누굴까요. 전화하신 분께서 말씀해주시지요." -본문 중에서

자신을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며, 단순히 사춘기시절의 자아찾기 이상의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쉽게 스스로를 알고 있거나 알 수 있다고 착각한다. 비비언 고닉의 경우 읽기를 통해, 또 쓰기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나 역시 어쩌면 내가 먹은 음식들이 아니라 내가 읽은 책들, 그 중에서 별도의 시간을 할애 해 기록을 남긴 책들이 나를 말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를 말하고자 할 때,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을 때 이 책이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엄청나게 얇은 이 티저북 만으로도 이토록 큰 공감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제 한 권의 온전한 책을 읽어야 할 차례다. 그러면 또 어떤 감상이 나를 찾아들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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