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여자, 작희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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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문 퇴마사'라고 들어보았는가. 소설 쓰는 여자, 작희는 첫 장에 등장하는이 퇴마사의 직업이 심상치 않다. 잘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는 은섬은 작업실을 같이 쓰는 동료들에 의해 퇴마사와 만나게 되었지만 구마를 위한 생활규칙은 마치 유명 작가들이 제시한 노하우, 집필 규칙처럼 실용적이었다. 가령, 정해진 시간동안 반드시 글을 써야 한다든가, 식사는 규칙적이며 영양소를 균형있게 섭취해야 한다든가 하는 내용이었다. 하기 싫거나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은섬은 퇴마사가 제시한 규칙을 따르면서 큰아버지의 조언대로 실력있는 작가에서 '잘팔리는 작가'가 되기 위해 1930년대에 활동했던 소설가 오영락 기념관 사업에 동참하게 된다. 그의 오래된 문서와 함께 발견되었던 일기장이 다름아닌 '작희'의 일기였고, 고문서를 복원일을 하던 퇴마사의 도움으로 오영락의 이름으로 발표된 소설 중 한 편이 실제 저자가 그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보면 마치 이 소설이 작품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가는 추리물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작품은 여성의 학업과 사회활동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가정폭력이 비일비재했던 참혹한 여인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몰입해서 읽으면서도 해도 너무한 내용들, 하지만 분명 있었을법한 일들이기에 화가나 책을 잠시 덮기도 했다.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핏물로 물드는 저녁 하늘을 보았다. 이곳은 온통 한스럽고 고통으로만 가득찬 수라와 같은 세상이다. 지금 울고 있는 사람이 또 있는가. (본문 중에서)


작희는 어쩌다가 오영락에게 글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을까. 애초에 그녀는 여성이기에 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절에 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려고 했을까? 소설가가 꿈인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작품 속 안나처럼 준비없이 우연한 계기로 작가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꿈이라고 차마 말하진 못해도 '언젠가 한 번은 꼭' 책을 쓰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왜 그렇게 쓰고 싶은것일까? 소설속에서도 서로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글을 쓰고 싶어하냐고.


"글이 너에게 뭘 해줄 거라 바라고 글을 쓴 건 아니지 않니? 그냥 기쁠 때가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행복할 때나 매일같이 쓴다고 하지 않았어? 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사는 거지. 작희야, 그렇게 글에 기대 사는 거다." (본문 중에서)


독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의 시련이 찾아왔을 때 책을 읽는다고 슬픔이 사라지거나 괴로움이 줄어들진 않는다. 심지어 바쁠때일수록 소설과 시는 변함없이 가슴을 두드리고 마음을 흔들어댄다. 작희를 만나서, 또 은섬을 만나 또 다른 누구의 문장을 품에 안을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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