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알에이치코리아 #타국에서의일년 #이창래 #장편소설 #소설 #소설스타그램 #소설추천 #독서그램 #책스타그램 #북리뷰 #RHK북클럽

• 삶 속에 숨겨진 단 맛을 찾아가는 소설, 타국에서의 일 년

자기 몫의 달콤함.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오래도록 곱씹게 될 말이 아닐까 싶다. 사는 동안 맛보지 못한 달콤함은 무엇이며 결코 맛볼 수 없는 달콤함이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씁쓸함까지 맛보게 하는 이창래 작가의 <타국에서의 일 년>. 작가의 전작도 워낙 ’대작‘이라 기대를 안한 것도 아닌 데 ’타국에서의 일 년‘이라는 장소와 시간적 제한에 갇혀 나도 모르게 ’도대체 그 때,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건데?‘라고 작품이 줄 수 있는 ’달콤함‘을 축소시켰던 것 같다. 내가 맛본 달콤함은 이렇다.

우리가 달달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미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누군과의 만남 속 관계에서도, 또 그런 관계들을 그저 바라보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 상황을 ’달달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 달달한 순간이 기쁘거나 ’선‘에 가깝지만은 않다. 때로는 지나치게 달아서 뱉어버리고 싶은데도 그럴 수 없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티의 삶은 어떠했을까.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후 결코 채워지지 않을 커다란 구멍이 생겼음에도 마치 거대한 폭풍이 휩쓸고 지난 후 처럼 결국은 살아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드물게 회의에 참석하러 도시로 나가 있었고, 대신 옆집의 친절한 노부부가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들이 마침내 차를 몰고 떠날 때, 그들의 뒤통수가 점점 작아지고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질 때까지, 내 마음은 여전히 그들을 따라 달려가고 있었다. 482쪽

퐁과 함께 떠났던 타국에서의 일 년이라는 경험으로 ’이전에는‘이라며 스스로 달라졌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어째서인지 이전보다 더 많은 감정과 사연을 이해하는 폭이 커졌을 뿐 ’다른‘사람이 된 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나아졌느냐고? 그랬으면 좋겠다. 더 관대하고 현명해졌느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나 자신의 더 용감한 버전이 더욱 확고한 취향을 가진 틸러가 됏을 뿐일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쪼개서 까 보지 않는 한 무엇이 정말로 발전했는지는 알 수 없다. 242쪽

이 책이 티라는 청년이 특별한 체험을 통해 성숙 혹은 성장해가는 성장소설이라고만 보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시에 작가의 필력이 느껴지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소설은 형편없는 헤어 스타일마저 신경쓰이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이 완벽한 ’퐁‘과의 만남 전 후, 아무리 모성이 그리워도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밸‘이라는 여성과의 동거중인 현재를 오간다.

벨과 함께할 때의 요점은, 과거가 언제나 현재 속에 살아 있다 해도 계속 눌러 끄다 보면 현재가 어쨌든 굴러간다는 것이다. 112쪽

그래, 뭐. 이런 말이 나에게 관해 어떤 의미를 드러내든 상관없으니 그냥 말하겠다. 그건 엄마의 포옹이었다. 엄마가 시간을 벗어난 곳에 존재한다면 그리고 영원하다면 그리고 우주만큼 품이 넓고 비판적이지 않다면 말이다. 120쪽

퐁을 만나기 전 ’제 몫의 달콤함‘을 깨닫지 못했던 이유인 엄마의 부재는 곧 다른 이들의 ’엄마‘의 역할과 기억들을 소환할 수 밖에 없다. ’엄마들‘의 모습을 통해 독자인 나는 티의 성장만큼이나 ’엄마‘이자 ’그녀‘들의 이야기에도 쉽게 매혹당할 수 밖에 없었다. 어디에나 책을 늘어놓고 항상 ’무언가를 읽고 있는‘ 모습,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돌아왔을 때 테라핀 냄새를 풍기는‘ 모습 등은 실제 내 아이에게 보여주었거나 현재진행형이자 앞으로도 이어질 모습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나는 자식이라면 누구나 자기 부모의 본질적 성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나중에 뭐라고 주장하든 말이야. 우린 부모를 그 씨앗까지 꿰뚫어 볼 수 있어. 201쪽

퐁의 말대로 우리들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부모들의 이야기이기에 <타국에서의 일 년>이라는 ‘똑같은 소설’을 읽고도 우리가 음미하게 될 ’자기 몫의 달콤함‘은 저마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길고 긴 이야기를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열심히 찾아보게 된다. 아마 이 서평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혹 아직 읽지 않은 미래의 독자 중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 혹은 경험하기 전의 조언‘을 얻기 위함이 독서를 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적극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