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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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힘이 어느정도까지 커질 수 있는지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믿음만으로 암이 나았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부모의 잘못된 믿음으로 귀한 아이가 생명을 잃기도 한다. 권오경의 소설 <인센디어리스>는 얼핏 보면 극단적인 종교에 미쳐버린 한 여성과 그 여성을 끝까지 놓지 못하는 남자의 연애소설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은 부서진 영혼이 제대로 치유받지 못했을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보고서라고 생각되었다.

존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고통의 밖이 아니라 그 안에 함께 거하신다고 말했어요. 내가 상처 입힌 사람들을 되새기로 내가 실패한 시간들을 열거하는 일은 곧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해요. 그리스도께서 내리는 정화의 불길은 고통이 아니라 죄예요. 242쪽

피비는 엄마를 잃었다. 사고였다. 하지만 피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운전대를 잡았기 때문에 사고가 났고 자신이 기적과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를 구해내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있다. 피비에게 엄마는 마치 절대적인 존재였다. 마치 신처럼. 엄마와 아이가 분리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속상할까. 세상에 저 혼자인듯 외롭고 무기력해질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무기력을 이성들과의 만남과 약으로 견뎌보는 피비. 하지만 마음 속 공허함, 자신이 스스로 지운 무게를 누군가 걷어내주길 바라던 피비에게 다가온 '존 릴'은 처음에는 그녀로부터 이야기를 꺼내어 놓게 하고 그 과정을 치유가 아닌 자신의 극단적인 결의를 이행하는 데 이용한다. 뉴스에서 마주하는 사이비 교주들의 폭력적인 성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피비가 괴로운 사건들을 토해내며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과정만 보더라도 주변에서 잘못된 길로 빠지고 마는 사람들 스스로의 나약함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성서에 예수가 시험을 당하던 상황을 떠올려보라. 상황이 단단하고 주변에 믿을만한 사람들이 여럿 존재하고 행복과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혼자여서 외로웠고 굶주려있을 때였다. 여기에 자신의 죄 마저 결국 속죄받을 수 있다는 제안마저 받게된다면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피비를 처음에는 구해낼 수 있다고, 존 릴의 거짓을 다 밝힐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윌이 독자입장에서는 더더욱 안쓰러웠다. 윌 또한 신의 사랑을 시험하고 스스로 놓아버린 나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행위를 일으키는 종교단체는 성서 속 신도 그렇게 벌을 내렸다고 변명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런 신의 대리자라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신은 처벌을 대신 처리해 줄 대리자가 필요하지 않다. 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을 전해줄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종교에 지나치게 빠져있는거나 '미쳐'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아마도 무조건적인 사랑일 것이다. 피비가 속죄나 믿음이라는 말 대신 사랑을 제대로만 잘 알았더라면, 끝까지 사랑을 선택하지 못한 것은 그녀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보여준 이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권오경은 신앙의 상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 고통이 이 소설을 쓴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자그마치 10년의 세월에 걸쳐 <인센디어리스>를 집필하며 그가 목표로 했던 것은 신앙인과 비신앙인 사이의 간극에 다리를 놓는 것이었다.

317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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