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극찬하길래 궁금해서 구매했던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을 어제 새벽에 읽었다. 구매이력을 찾아보니 지난 2월이니 6개월도 더 지난 것이다. 녹색의 겉표지를 벗겨내면 책그림이 그려진 본서가 등장하는 데 첫 페이지에 이미 '헌책방'이란 키워드가 보이니 아마 애서가들의 마음을 훔치기 적당한 책이구나 싶었다. 배경이 1950년대라서 그런지 아주 다른 나라라기 보다는 그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의 한 부분이라는 친근함마저 느껴졌다. '헌책방'이란 단어가 주는 영향력이 이정도라니.
'나'는 대학원 논문에 바쁜 상태지만 조만간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가 있다. 그녀를 뜨겁게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없지만 소중하다고는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헌책방에 있던 H전집을 사던 전후의 내용이 글의 초반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전집을 판 사람을 이미 알고 있던 약혼녀와 그와의 사정들이 등장하는 등 '나'의 시선으로만 진행되는 방식이 아니라서 일인칭 시점에서 쓰여지는 소설들에 비해 훨씬 답답함이 적었다. 후기를 적기위해 찾아보니 1964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인데다 1960-70년대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은 책이라고...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80년대 젊은이들에게 지지를 받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려나.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젊은이들의 고민은 수백년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념, 사랑이 중요한듯 싶다가도 어느순간 자아찾기만큼 중한 것은 없는듯 하고 유년시절 친구가 전부였던 시절을 탈피하듯 고독을 즐기다 결국 외로움에 방황하다 가족으로 돌아가든, 하늘로 돌아가든 어디로든 돌아가게 되는 순서.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는 무슨말을 할 수 있을까.
다른듯 하지만 내게는 그 질문이 이전에 어느 신부님 강론 중에 나왔던 질문과 비슷하게 다가왔다.
죽어서 예수님앞에 섰을 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메멘토모리. 죽음을 생각하는 삶을 다시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