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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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씨의 유서가 내 손에 전해진 날 밤, 내가 그 유서를 펼쳤을 때, 그 속에서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하는 의문이 못처럼 내 가슴에 콕 박혔어. 마치 내게 던지는 질문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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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극찬하길래 궁금해서 구매했던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을 어제 새벽에 읽었다. 구매이력을 찾아보니 지난 2월이니 6개월도 더 지난 것이다. 녹색의 겉표지를 벗겨내면 책그림이 그려진 본서가 등장하는 데 첫 페이지에 이미 '헌책방'이란 키워드가 보이니 아마 애서가들의 마음을 훔치기 적당한 책이구나 싶었다. 배경이 1950년대라서 그런지 아주 다른 나라라기 보다는 그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의 한 부분이라는 친근함마저 느껴졌다. '헌책방'이란 단어가 주는 영향력이 이정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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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원 논문에 바쁜 상태지만 조만간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가 있다. 그녀를 뜨겁게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없지만 소중하다고는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헌책방에 있던 H전집을 사던 전후의 내용이 글의 초반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전집을 판 사람을 이미 알고 있던 약혼녀와 그와의 사정들이 등장하는 등 '나'의 시선으로만 진행되는 방식이 아니라서 일인칭 시점에서 쓰여지는 소설들에 비해 훨씬 답답함이 적었다. 후기를 적기위해 찾아보니 1964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인데다 1960-70년대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은 책이라고...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80년대 젊은이들에게 지지를 받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려나.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젊은이들의 고민은 수백년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념, 사랑이 중요한듯 싶다가도 어느순간 자아찾기만큼 중한 것은 없는듯 하고 유년시절 친구가 전부였던 시절을 탈피하듯 고독을 즐기다 결국 외로움에 방황하다 가족으로 돌아가든, 하늘로 돌아가든 어디로든 돌아가게 되는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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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는 무슨말을 할 수 있을까.

다른듯 하지만 내게는 그 질문이 이전에 어느 신부님 강론 중에 나왔던 질문과 비슷하게 다가왔다.

죽어서 예수님앞에 섰을 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메멘토모리. 죽음을 생각하는 삶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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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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