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다 - 카르멘 라포렛 탄생 100주년 기념판
카르멘 라포렛 지음, 김수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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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했던 내전 이후 1940년대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키르멘 라포렛의 <아무것도 없다>의 제목의 의미는 한가지로 볼 순 없을 것이다. 1인칭 시점의 작품으로 화자인 안드레아의 시선으로 보자면 내전으로 망가진 바르셀로나 곳곳의 피폐된 모습은 마치 이제 막 무언가를 시작하려하는 안드레아의 의지를 반대하고 비난하는 이모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안드레아가 아닌 외갓집의 다른 가족들의 시선으로 보면 그들 모두 결국 내전의 피해자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된다. 이모가 떠나기 전 안드레아를 붙잡고 체념하듯 혹은 미혼의 여성으로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던 수녀로서의 삶을이야기 하는 장면을 보면 처음부터 안드레아를 괴롭힐 생각은 없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조카인 그녀를 자신이 평생 돌봐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고 자신 또한 정신을 놓아버린 외할머니와 끊임없이 집안의 분란을 일으키는 올케,외숙모로 인해 삶이 망가졌다며 탓을 한다. 외숙모의 삶은 또 어떤가. 그녀의 말대로라면 아직 집안에 갇혀살만큼 나이들지 않았고 남편은 돈도 제대로 벌어다주지 못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며 시동생은 마치 그런 자신의 삶을 바꿔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역시나 다른 누군가를 탓할 뿐이다. 이들 외에도 자신의 문제를 타인과 외부에서 찾으려는 모습이 만연된 안드레아 주변인들의 모습을 보며 결국 내전으로 인해 고통받은 스페인의 모습을 한 여인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이 책의 찬사가 납득은 물론 공감할 수 있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무것도 없다‘는 안드레아가 희망하는 삶을 위해 준비되어 있거나 혹은 그녀를 위로 할 무언가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깨달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외할머니집으로 가면이라고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늦은 밤 도착한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절망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듯해도 할머니에게서 친구인 에나에게로 또 로만 삼촌에게로 이어지는 흐름을끊을 수 있는 건 결국 스스로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진정한 희망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화자인 안드레아의 시선이나 처지보다는 이모와 외숙모의 삶에 더 마음이 동하고 괴로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만약 내가 아직 누구에게나 청년으로 불리는 나이었다면 좀 더 나아지기 위해 길을 떠나는 안드레아에게당연히 감정이입이 되었겠지만 결혼 후 그 이전의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면서도 아주 느리지만 분명하게 폭력에 잠식되버린 외숙모나 신에게 자신을 맡겨드린다면서도 여전히 신이 아닌 자신의 뜻을 쫓는 더이상 소녀가 아닌 그들에게서 쉽사리 맘이 떠나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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