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 룸
레이철 쿠시너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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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를 죽였다. 하지만 죽였다는 사실만 인정될 뿐 '왜'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검사도 판사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변호인 조차 불인정이 형량만 늘릴 뿐이라며 자백을 강요했다. 그렇게 로미는 스토커를 죽인 그 날 이후 어느 것 하나 맘대로 소유할 수 없었고 어느 한 사람 조차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낳은 아들 잭슨까지도.


마스 룸에서 스트립댄서로 일하는 로미는 베트남참전용사 출신의 커트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있었다. 전화번호를 바꿔도 그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또 다시 전화를 걸어왔고 그녀를 뒤쫓아 오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 그를 피해 아들과 함께 이사를 했지만 그곳까지 그가 들이닥쳤을 때 로미는 더이상은 그를 봐줄 수가 없었다. 이런 자세한 내용이 이야기에 맨 앞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마스 룸의 저자 레이첼 쿠시너는 그렇게 간단하게 상황을 알려주지 않는다. 뿐만아니라 서두에 말한 것처럼 억울한 누명벗기기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었다. 스티븐 킹의 추천사처럼 영리한 작가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미 로미가 재소자가 된지 2년이나 흐른 뒤였다. 더군다나 그녀는 가석방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그것도 37년후에나 가능한 그 심사의 기회마저 동료 재소자의 출산을 돕느라 날려버렸다. 답답한 상황속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그녀의 유년시절, 동료 재소자들의 과거 이야기를 듣다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오고간다. 샌프란시스코의 서민들은 중국계 미국인 그리고 가톨릭계 아일랜드인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은 백인들의 조소와 뜻밖의 배려를 동시에 받으며 살아간다. 경제적으로 부를 이뤄 자식들 세대만큼은 형편이 나아지는 경우도 있고,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로미는 안타깝게도 앞의 두 경우에 해당되지 않았다. 빈민가의 아이들 답게 밥보다 약을, 보호와 규제보다는 방임과 방치에서 성장했다. 저자는 교육의 중요성과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려고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니다. 재소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만도 아니었다. 오히려 로미와 그녀의 아들 잭슨을 떼어놓는 법의 역할이 못마땅할수록 교관들의 말이 더 와닿았다. 아들을 그렇게 걱정했다면 그런 짓을 저지르면 안되었다는 말. 그 말들이 반복적으로 나오면서 처음에는 로미의 억울한 사정을 모르는 교도관들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제대로 변호하지 않았던 존슨의 변호사도 마찬가지였다. 로미의 말처럼 그녀를 이토록 괴로운 상황에 놓이게 만든 것은 그날의 사건이 아닌것 같다. 


표지와 책소개를 통해 내용을 잠시 보았을 때 이 억울한 재소자 로미가 어떻게 누명을 벗을 수 있을지, 혼자 남게된 아들 잭슨은 어떻게 엄마없는 세월은 견뎌낼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만약 역자의 말을 먼저 보았더라면 좀 더 많은 생각과 넓은 시각으로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평소라면 역자의 후기, 특히 문학일 경우 더더욱 본문이 끝난 후 순서대로 읽기를 권했겠지만 이 책 만큼은 그런 이유로 역자후기를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강도에게 호감을 보인 배우의 이름을 자신의 딸에게 붙여주었다는 로미엄마의 이야기가 결국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누구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만 무엇에 흥미를 느꼈는지가 각양각색일 것 같다. 진짜 영리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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