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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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던 날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길게 가진 못했다. 임신을 하고 입덧으로 밤잠을 설칠 때에도, 아이가 태어나 시도때도 없이 우유를 주어야 할 때조차 책은 꼬박꼬박 읽었던 것 같다.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반대로 이런 나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준 사람들도 있었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은 파티 드레스>를 보면 저렇게 극과극인 사람들과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놀랄일은 아니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위대한 책이든 나쁜 책이든 신문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읽는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그것들 모두가 양식이 되어준다.

요컨대 한쪽에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읽기가 전부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15쪽


독서는 내게 쉼이자 처방제며 동시에 애증의 대상이었다. 이사하기 전후로 남편과의 언쟁의 주요 원인은 육아를 제외하면 책이었다. 작은 아파트에 내게 할애된 공간이면 그곳이 벽장이며 화장대 일부까지 책을 넣어두었으니 남편을 탓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름의 변명은 옷도 많지 않고 화장품도 없고 이렇다할 수집품도 없는데다 책 몇 권....인데 말이다.



부부란 김빠진 삶의 장이고, 열정은 분열된 삶의 장이다.

그런데 사랑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집 문앞에 선 채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참담한 발견에,

이모든 한심한 정의에 경의를 표한다. 54쪽


어떤 책이었는지, 또 내용도 정확한 것인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결혼을 결심한다는 것은, 나의 배우자가 상상치도 못할 방법으로 내 마음을 찢어놓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각오를 할 수 있을 때 하는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통의 예비 신혼부부가 그러하듯 우리도 이 사람이라면 무엇을 하든 '행복할거야'라는 기대로 결혼을 하기 마련이다. 다행인것은 결혼할 때는 저런 각오가 없었지만 아이는 그럴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는게 우리 부부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그렇듯 정성을 다해 도면을 살펴복호 각 방의 용도를 꼼꼼히 따져보았었다. 내 책상은 이쪽에, 아이들 방은 이층에, 멜랑콜리는 사방에, 하면서. 96쪽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하다보니 준비기간만 한달이었다. 화장실부터 가구조립까지 남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청소는 함께 했지만 그외에 내가 한 일이라고는 간식을 챙겨주고 색깔을 고르고, 디자인을 고르는 정도였다. 가구가 다 제자리에 놓이고 마지막에 내 책상을 조립해서 자리를 만들어주었을 때의 그 뿌듯함과 고마움이란. <작은 파티 드레스>는 이처럼 애서가, 초보엄마, 부부 그리고 소소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아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긴 시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혹 앞에 나열한 항목 중 해당되는 부분이 있거나 그에 해당하는 배우자, 연인 혹은 지인이 있다면 그 상대와의 평화로운 관계유지를 위해서라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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