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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시
한산 지음, 신흥식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6월
평점 :

인생이라야 백년도 채우지 못하는데
항상 천년의 근심을 품고 사네.
자신의 병이 탈이 났는데
또한 자손들 근심뿐이네.
아래로 벼 뿌리를 보고
위로는 뽕나무가지 끝을 살피네.
저울추가 동해로 떨어지고
바닥에 닿아야 비로소 쉴 줄 알게 되려나? 122쪽
<한산시>는 요약하자면 당나라 시대의 풍간선사의 시를 제자인 한산이 편집한 것으로 한산시 혹은 삼은시집이라고 한다고 서문에 적혀있다. 불교에 대한 교훈이 담겨져 있다고는 하지만 위의 발췌한 시만 보더라도 인생을 관통해 사람이 깨달아야 하는 부분을 담았으니 스님의 시라고 종교적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고 심지어 길지도 않은데 참 많은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산다. 책에 실린 시들 중에서는 찰나처럼 지나가는 시간은 좋은 벗과 함께 한 시간인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홀로남은 외로움을 담은 작품도 도 있고(48) 또 어떤 시는 자신의 마음을 가을 달에 비추어 마치 유교사상에서 말하는 마음껏 행해여도 윤리에 어긋남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작품(50)도 있어 부럽기까지 했다. 불혹인 내게는 왜이렇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전히 조심스럽고 말실수는 왜 해마다 한번 씩 크게 나를 괴롭히는지 고민인데 불필요한 걱정을 안고 살아서 그런가 싶기도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친구와 헤어져 혼자인 시간에 눈물을 흘린다는 표현을 보자니 인간이 가지는 고독과 외로움은 아무리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아도 어쩔 수 없는 굴레인가 싶다. 모든 종교가 그렇지만 특히 불교에서는 탐욕,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을 조심하라하는데 이를 어진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비교한 작품(91)도 있었다. 내용을 일부 가져오면,
어진 이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이권을 좋아하네.
보리밭은 남의 것까지 차지하고
대숲을 모두 내 것이라 우기네. 90쪽
위의 시를 읽을 때에는 얼마전에 읽었던 책 중에 이기적으로 사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주어진 것조차 마치 자기의 소유인듯 선을 그어버리면 안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나눔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사실상 내것을 나눠준다는 것이 가치여부를 떠나 여러가지 염려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가하면 더 빼앗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참 많음도 깨닫는다. 습득시중에서는 피식 하고 웃음이 나는 작품도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습득시 13
세상엔 어떤 종의 사람이 있는데
타고난 성정이 항상 일을 벌이네
하루 종일 거리를 쏘다니며
여러 술집을 떠나지 못하네.
남의 보증이나 서주고
남을 대신해 도리를 따지네.
하루아침에 일이 어그러지면
허물이 완전히 네게로 돌아가리라. 307쪽
요즘의 시가 아닌 지어진지 오래된 시를 마주하게 되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주제가 있기도 하고 지금은 없지만 과거에만 존재하는 사건이나 현상을 표현하는 시들도 있어 비교하면 재미나는데 위의 내용은 선자에 해당된다. 어느시대여도 술과 빚보증 그리고 내 눈에 들보는 모르고 상대방의 티만 잔소리 하는 사람들은 못난 사람들이라는 평을 들었나보다. 그것이 타고난 성정이자 '종'으로 표현되니 다소 과격하고 엄중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어디선가 들었던 교훈과 깨달음이 가득한 <한산시>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이런저런 부연설명없이 저렇게 한 편의 시로 닫히고 완고한 마음을 깨우쳐 주니 혹 지인들에게 편히 권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