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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ㅣ 걷는사람 시인선 23
김대호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5월
평점 :
어떤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만 이야기한다. 또 어떤 시집은 고통을 한껏 뿌려놓았다가 일시에 한 단어로 희망으로 탈바꿈한다. 전자든 후자든 그런 시들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고 경험하지 못한 고통마저 마치 경험한 것처럼 각인을 새긴다. 김대호 시인의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는 보통의 시집이 한 번 읽고 말아버릴 수 없긴 하지만 더없이 읽고 또 읽는 행위를 반복하게 만든 작품이 많았다.
가난해도 소박해지지 않아서 않아서 가난을 신뢰하지 않는다
친절한 것은 일몰에 걸린 노을 뿐
매일 기도한다.
이곳에서 이곳의 풍습에 친절해질 수 있게 해 달라고
차가운 금속들을 만질 때 소박한 기분이 찾아오게 해 달라고
모든 것을 두 번씩 생각하지 않게 해 달라고
-'무거운 것은 왜 가벼운 것에 포함되는가' 중에서 (38-39쪽)-
표제를 다시금 들여다 본다. 설명이 필요하다면서 '두 번씩 생각하지 않게 해달라고'기도한다는 시인의 말에 어리둥절 해진다. 그러니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다. 해설자의 말을 들여다보며 그의 방식을 고민해보지만 역시나 알듯말듯하다. 그러니 시인이 묻지도 않은 질문에 나홀로 대답한다. 나는 무엇에 소박하고 또 무엇에 짓눌리며 무게를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가하면 '관계'라는 단어에 음탕함을 알면서도 누군가는 '관계'를 '소통'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고도 말한다. 이번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은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니 같은 의미가 아니고 무엇일까.
누군가는 소통을 관계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이렇게 많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는 무엇인가
가정폭력 혐의가 있는 자는 매일 관계하던 자기 집에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한다
관계는 폭력적이다
-'관계자외 출입금지' 중에서 (65쪽)
시인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표제아래 여러 차례 생각하기를 부정하면서도 권하고 심지어 '당신 박복하는 반복 씨 맞나요?'란 작품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반복하고 있고 어떤 반복은 형벌과도 같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오연경 문학평론가는 '견디기 힘든 생활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이 팽배하지만 그의 불가능한 계산법은 끝내 우리를 저 어둠의 온기와 활기로 데려나 놓는다'고 말한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김대호 시인이 시를 통해 토해놓은 고통들은 시인 뿐 아니라 이 시를 읽는 독자인 나 역시 살아있는 동안 반복될 고통이지만 어째서인지 뒤로 갈수록 그 고통이 마냥 고통인것만은 아닌 기분이다. 고통을 함께 해주는 시와 시인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역시나 '설명을 들어줄 누군가' 혹은 '설명해줄 누군가'이마저도 아니면 '설명은 필요없지'라고 결론지어도 무방한 상태로 초대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삶과 그 안의 고통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어쩌면 '이후의 주소'에서 말하듯 '무언가 내게로'와주어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