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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마북 -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면 가장 소중한 책이 된다 ㅣ 마더북
엘마 판 플리트 지음, 반비 편집부 엮음 / 반비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마흔에 아이를 낳고보니 낼모레면 아이의 할머니, 즉 나의 엄마는 일흔이라는 나이를 코앞에 앞두고 있었다. 아이가 스무살이 되면 아흔. 내 마음이 급해졌다. 엄마는 매일매일 조금씩 기력이 약해질테고 아이는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바빠질 수 밖에 없는데 둘 사이의 반드시 엄청난 일들이 벌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서운한 맘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알게된 책 <그랜마북>. 원래대로라면 내 아이가 할머니인 내 엄마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직접 책을 읽어가며 엄마가 답을 달아야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다행이라고 할 순 없지만 몇 달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아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와있는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 아이대신 내가 질문을 던지고 받아적는다.
"엄마, 옛날에 살던 집 기억나?"
"엄마, 삼촌들이랑 이모들 중에 가장 친한 사람이 누구야?"
"엄마, 외할머니랑 특별한 추억같은게 있으면 말해봐."



엄마는 다짜고짜 던지는 나의 질문이 귀찮을만도 하지만 워낙 특이한 딸인지라 이유가 뭐냐고 묻지도 않고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중간중간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웃기도 하고 몰랐던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중 몇해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와의 추억이야기가 깊어지자 결국 엄마눈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가 울컥했던 부분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시집오기전까지 외할머니가 엄마 생일날이면 빠짐없이 생일떡을 해주었던 이야기를 들려줄 때였다. 아들인 큰삼촌이나 다른 이모들도 그렇게 해주진 못했는데 큰 딸인 엄마의 생일날은 병세가 있어 아프셨던 와중에도 한해도 빠지지 않고 해주었다고 했다. 그런 사연은 나도 처음들었다. <그랜마북>이 아니었다면 아마 모르고 살았을이야기였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병세가 악화되었던 2년동안 거의 간호를 도맡아했다. 전쟁중에 위의 오빠 둘을 먼저 보내고 그나마 전쟁에서 살아남은 큰 언니마저 병으로 먼저 보낸 뒤 장녀아닌 장녀로 살아온 엄마에게 그 시간은 책임과 의무의 시간이 아니라 외할머니와 그 어느때보다 가깝게 지내며 마주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아이를 대신해 <그랜마북>을 작성하고, 또 아픈 나를 대신해 내 아이를 보살피는 엄마의 모습을 침대위에서 바라보며 맘으로 계속 울었다. 엄마에게 왜 진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묻지 않았을까. 나의 유년시절을 좀 더 화려하고 애틋하게 만들어주지 못한 것만 불평하고 원망했던 내가 밉고 또 미웠다. 나는 내가 미워졌는데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속에서 외할머니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꼈고, 엄마 또한 나를 그렇게나 사랑했음을 깨달았다. <그랜마북>은 내 남편에게 그리고 내 언니에게도 선물해주고 싶다. <그랜파북>도 빨리 출간되길. 내 아빠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내 아빠의 이야기도 내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