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취향수집 에세이
신미경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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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서부터 느낌이 확 오는 책이 있었던가. 신미경 작가의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는 프롤로그의 첫 문장부터 남달랐다. 요가를 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다는 문장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사소한 일정이 특별하게 시간을 내야만 가능하다고 믿었던 과거가 있었기에 남다르게 다가왔다. 내 몸의 건강과 내 마음의 평온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저 한 문장에서 이미 다 드러나 있었다. 최소 취향이라는 말에 얼마나 특별하고 부러울 만한 취향을 이야기하려나 싶었던 나의 착각이 민망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번아웃 증후군을 겪은 뒤에 비로소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사람들, 고전에서 삶을 배울 수 있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했지만 이처럼 당장 하나하나 시작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적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당장 시작할 수 있지만 완벽하게 체화되기 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는 저자의 생활방식은 다름 아닌 비움과 배움 그리고 '지금을 사는 것'이 었다.





나는 일이 좀 안풀린다 싶으면 집에 있어서는 안 될 게 있는지 샅샅이 수색한 뒤 버린다. -중략-
내게 고통의 기억을 안긴 거슬리는 물건을 없애고 나면 늘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부정적으로 느낀 기운이 사라지면 어느새 막힌 운이 뚫려 원활히 순환되는 느낌. 
매우 미신적인 접근이지만 불행한 기분이 들 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34쪽

미니멀리즘을 실천에 옮기는 이웃블로거들의 글이 거의 매일 새글로 올라오는 것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이란 말을 달고 살았다. 학업이 끝나면, 퇴사를 하면 등의 수많은 이유들이 나의 실천을 방해하곤 했다.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과거 어느 때라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었던 때라는 것을. 아직 돌 된 아이를 기르게 되었으니 미니멀리즘은 더 멀어진 것 아닐까 싶었지만 신기하게 아이의 짐을 늘이기 위해 자연스럽게 내 짐, 내게 불필요하거나 미련으로 남았던 물건들을 치우게 되었다. 버리고나서 많이 후회할 것 같았지만 육아로 지친 몸과 맘은 버려진 물건을 추억하기에는 그렇게 여유롭지 못했다. 더군다나 비어진 틈사이로는 아이가 주는 기쁨과 아주 잠깐이지만 놓칠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으로 가득채우고도 남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쉽사리 버려지지 않았던 것은 인플루언서나 연예인들을 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내 눈에 예뻐 보였던 스타, 모델, SNS 인플루언서들의 옷차림이 나에게도 어울릴 거란 보장은 없다. 남들의 스타일링을 참고하면 대부분 실패하는 쇼핑을 했다. 물론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사고 싶었다. 
나의 욕망은 그들이 가진 이미지였다. 64쪽


육아템을 검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인플루언서들의 글과 리뷰를 볼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사용하는 아이템을 구매하면 육아가 좀 더 수월해지고 조금은 멋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이내 마음을 접는다. 수백개를 넘어 수천개의 리뷰를 읽어보아도 결국 아이는 모두 다 다르고 아이를 키우는 나 또한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가장 좋은 아이템은 결국 내 아이와 나에게 가장 잘맞는 것을 찾는 것이다. 많은 엄마들이 극찬하는 바운서가 내게는 아이의 옷을 걸쳐두는 용도로 밖에 쓰이지 않았던 반면 극소수의 맘들에게만 극찬을 받았던 아기베개가 내게는 정말 고마운 아이템으로 남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영화 <패터슨>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를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해가 간다. 일상에서 예술을 하는 것. 시인이 되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퇴근길에 모임이나 혼술을 상상하며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글 한 줄을 적거나 제대로 선을 치진 못해도 종이와 연필을 들고 애써보는 자세가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장황하게 늘어놓는 다른 강의나 연설보다 직접적으로 예술화된 삶 그자체를 살아가는 단조롭지만 명징하게 드러나는 패터슨의 하루하루에 느끼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 괴로울수록 꿈은 또렷하게 다가온다. 
절벽 끝에 매달린 기분에서 벗어나게는 해주지만 나는 결코 그 꿈을 이룰 수 없을 테다. 
'언젠가는 오늘이고, 언젠가는 지금 당장'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그렇다. 152쪽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학문으로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바람을 오래도록 간직만 하다가 마흔을 앞두고 편입을 하고 올해 2월 졸업을 했다. 그 덕분에 미술분야로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언젠가라는 말 뒤에 숨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최소 취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 권을 다 읽고도 어렵다면 저자의 에필로그에 적힌 열 가지라도 삶에 녹여내보면 어떨까. 최소라는 것은 결국 '꼭 필요한'과 다름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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