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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를 위로하는 중입니다 - 상처를 치유하고 무너진 감정을 회복하는 심리학 수업
쉬하오이 지음, 최인애 옮김, 김은지 감수 / 마음책방 / 2020년 3월
평점 :
상대가 변할 수 있다는 기대가 실망으로 변할까 봐 아예 상대를 '변할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다 53쪽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대상은 흔히 연애중인 나쁜남자나 이미 결혼한 남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을 때 주변사람들이 해주는 조언들 중 하나다. 뿐만아니라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과거와 타인은 바꾸지 못하지만 나와 미래는 꿀 수 있다'라는 말로 처음부터 상대가 바뀔거라는 기대는 갖지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서두에 적은 발췌문을 보았을 때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얼어붙은 시간의 효과'라고 말하는 것으로 아이가 어린 시절 부모를 통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버리면 그것이 고정된 상태로 성장하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성격이 급한 아빠와 여행할 때면 늘 아빠의 비위를 살피며 조심조심 했던 기억이 어른이 되어서도 남아있었는지 아빠와 단둘이 무언가를 할 때면 선뜻 응한적이 없었다. 반면 늘 내게 맞춰주는 엄마와는 단둘이 여행도 종종 다니곤 했는데 엄마가 체력이 약해지고 나이가 드시면서 역시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시기가 오니 엄마와의 시간도 점점 멀리하는 나를 발견했다. 오히려 연세가 드시면서 이전보다 차분하면서도 다정해지신 아빠와 시간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교차된 감정이 들기 시작한게 얼마되지 않았기에 만약 이 책을 10년 전에 읽었더라면 '가족은 정말 변하지 않는걸까?'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네'라고 했을 것이다. 그때의 내가 아마도 '얼어붙은 시간의 효과'가 제대로 작용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과거와 마주할 때 어린 나 자신과 함께 다시 한번 성장할 기회를 얻는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나 사건과 화해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그보다는 나의 내면에 있는 그림자와 화해하고, 자라지 못한 내면 아이를 위로하고 돕는 일에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199쪽
그런가하면 살면서 지나치게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저자 역시 오래전 석사 논문을 준비할 때 썼던 글을 우연하게 읽으면서 지난 날 자기연민에 빠졌던 때를 이야기한다. 저자의 경험처럼 그저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는 것을 넘어 '나라도 나를 돌봐주자'라는 희망적인 방향으로 옮겨진다면 자기연민이 평소에 생각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돌봄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령 어린 시절 아이답게 어리광도 부리고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성장할 수 없었다면 나이는 먹어 책임과 의무는 지면서 정작 어린 시절에 갇혀 가까운 가족마저 비난의 대상이 되버리는 경우가 있다. 저자가 만났던 한 여성은 유년기에 아버지가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렸다. 이후 엄마는 새남자를 만났지만 폭력적인데다 심지어 엄마가 병들자 떠나버려 결국 엄마의 병수발까지 딸이 책임지게 되었다. 부모에게 충분한 지원과 사랑을 받고 자랐어도 막상 부양해야하거나 간병을 해야 할 상황이 찾아오면 모른 척 하기 쉽다. 그러니 홀로 부담했을 때 그 원인이 된 엄마가 얼마나 미웠을까. '애어른 효과'. 그런 그녀를 위해 저자가 해주었던 일은 어릴 때 하지 못했던 원망과 서운함을 맘껏 털어놓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것 뿐이었다. 아이처럼 토해내고 나서야 비로소 아빠가 집을 나가기 전 세가족이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고 엄마역시 아빠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너, 자기 머리 잃어버린 사람 봤어?"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깜빡하고 손이나 발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런 사람 봤어?"
작고 둥근 머리가 또다시 좌우로 흔들렸다.
"엄마한테 넌 머리와 손, 발과 똑같아. 절대 잃어버릴 수 없다는 거지." 284쪽
고개를 끄덕여가며 페이지를 넘겨보다가 '키워드 효과'편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4학년 마지막 학기중에 아이를 낳다보니 졸업 후전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겠다던 계획은 물론 졸업이나 무사히 할 수 있길 바랐었다. 그렇다보니 박사과정 중 임신하고 첫 아이를 여기저기 옮겨가며 길렀다는 저자의 이야기도 뭉클했지만 엄마가 자신을 잃어버렸는 줄 알았다는 말에 위의 내용처럼 대꾸했다니 눈물이 어찌 맺히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를 맡길 곳이 정해지면 다시 학교에 가야지 했던 내게 저자가 경험한 내용들은 막연하게 걱정만 했던 부분들을 보여준거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지금'의 나를 위로할 뿐 아니라 '미래'의 나도 위로해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이전에 썼던 글을 펼쳐보듯 나 역시 대학원에 진학 후 아이를 포함해 심리적으로 위로가 필요할 때 다시금 이 책을, 이 리뷰를 찾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