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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펜팔, 절친, 첫사랑 그리고 소설. 나열된 키워드 중 한 개라도 마음이 움직인다면 카티 보니당의 <128호실의 원고>를 무조건 추천하고 싶다. 왜냐면 이 모든것이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이 한 편의 소설에 담겨져있기 때문이다. 안느 리즈 브리아르는 책의 제목이 된 보리바주 호텔 '128호실' 서랍속에서 원고를 발견한다. 원고의 주인이 실수로 두고간 줄 알고 있었던 안느의 생각과는 달리 수신자는 그 원고가 무려 30년 전에 자신이 캐나다에서 잃어버린 미완성 원고라는 것을 밝힌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게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이지만 어쩌다 30년이나 지나 원래 주인에게 도착할 수 있었는지를 추리하는 과정이 안느의 친구 마기, 더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어주길 바랐던 나이마, 로메오 등이 등장하면서 벨기에, 런던 그리고 프랑스와 캐나다까지 수신처가 확대되고 수신인의 과거와 원고가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를 처음부터 마지막 한 페이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편지와 이메일로만 이어진다. 소설의 내용은 원고의 원작자인 실베스트르가 만났던 첫사랑과의 로맨스 소설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 변화를 일으킨 것은 연애중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책이 어쩌다 30년 동안이나 주인을 만나지 못했는지는 책을 읽다보면 그다지 궁금한 주제가 아니게 된다. 소설이 가지는 힘과 책을 통해 우리가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순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등장인물들을 통해 깨닫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안느처럼 여전히 편지쓰는 것을 즐기는 내게는 기계를 거부하는 마기가 다소 심각해보이긴 했지만 그 덕분에 모든 이야기가 편지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역자는 말한다. 다. 우리에게도 이런 우연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지만 안느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운명'도 만들수는 없었을거라고. 다만 몇 년전이었다면 역자에 이런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하며 우연이든 운명이든 그것을 만드는 것은 신이 아닌 바로 나자신이라고 말했겠지만 워낙 세상이 무섭다보니 책에서 마기의 입을 통해 잠시 언급되는 것처럼 운명일 것 같은 상대가 잭더리퍼와 같은 위험한 범죄자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는 현실에 마음이 씁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나또한 다른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까닭은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가 내가 살아온 과거와 비교하자면 정말 극적인 부분이 많지만 결국 누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사건'하나즘은 있을 뿐 아니라 당장의 놓인 문제앞에서 힘겨울 때 오히려 모두가 납득할 수 없는 소소한 '딴짓'이 마음의 여유를 찾게 해준다는 것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휴대폰이 없으면 당장 죽을 것 같다고 느껴지는 사람, SNS계정이 없는 것이 마치 사회생활과 담쌓은 건 아닐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쳐다보고, 그들을 알아가고 ,그들의 눈에 들기 위해 몰두하느라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말지. 그래서 그들과 멀어지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알 수 없게되고. 70쪽
그런데 저는 알고 있답니다. 이 작품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 소설은 제가 다 시 길을 되찾고 좀 더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해주려고 그 해변까지 온 거예요. 때때로 서로 만날 수밖에 없는 책과 독자가 존재하잖아요. 84쪽
친애하는 윌리엄,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신을 사로잡은 고민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드리고 싶어서예요. 저처럼 사람이 고립되어 살면 말이죠. 인간의 고민이 라는 것은 자연에게 우위를 내주고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버린답니다. 1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