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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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틀린 도티의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이란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염세주의자인가, 아니면 비관론자인가. 아니면 무언가 초월 그 이상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가 싶었다. 케이틀린 도티라는 저자의 이름을 보고서야, '장의, 장례'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는 그녀의 직업다운 또 그녀의 성격에 꼭 맞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시체를 억지로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선진국에서만 누리는 특권이다. 바라나시의 보통날, 인도의 갠지스 강둑 위에는 80개에서 100개쯤 되는 화장터가 자리 잡고 불이 타오른다. 매우 공개적인 화장이 끝나면 뼈와 재는 성스러운 강물 속으로 흘려보낸다. 89꼭

도티의 말처럼 죽은 시체를 아무때나 쉽게 볼 수 있는 어린이는 흔히 말하는 '선진국'에서는 거의 없다. 심지어 도티처럼 아주 어린 아이가 죽는 순간을 완벽하게 포착한다는 것은 '운이 나쁜, 그것도 매우 나쁜'에 해당될 뿐이다. 죽음을 쉽게 보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아예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면 흔히 말하듯 죽음 그자체를 떠올리는 순간 불쾌하고 불행하며 가장 참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죽음이 유쾌한 사람은 없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 역시 저자의 말처럼 희망보다 절망이 너무 가깝게 다가와있는 이들도 있으니 그 끔찍한 죽음이 덜 아프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선택하는 최후의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의 죽음을 목격했던 8살의 도티는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죽음은 '소리'되어 그녀의 꿈속에 찾아와 '쿵'소리를 내며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도망은 그녀가 성장하면서 조금씩 사라지는 듯하고 어느순간 더이상 그녀곁에 머물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녀가 선택한 전공이나 봉사활동 중의 파트는 '시체', '장례'에서 멀어지지 않고 꼭 붙어 있었다. 도망칠수록 더 가까워지는 것이 그녀에게는 죽음 이었고, 그런 그녀가 선택한 것은 죽음 그자체를 명징하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은행이나 어린이집에 취직하면 적당할 법한 20대 초반의 나이에 그녀가 선택한 직장은 장의사. 시체를 운반하고 면도하는 것 부터 레토르트(간편조리용 음식의 그 레토르트가 아니다!)에 넣고 버튼을 눌러 시체가 가루가 되는 순간, 또 그 순간 부터 유골함에 고운 가루로 담기는 과정에 이르는 전 과정을 모두 담당하며 그녀가 만(?)났던 시체들과의 인연들을 바로 이 책에 담아낸 것이다. 여기에 저자가 전공했던 중세사에서 배웠던 과거 동서양을 포함한 원주민들의 장례문화와 장례문화에 숨겨진 인류의 의식과 문명에 관한 이야기들이 양념처럼 등장 해 과연 인간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이며, 죽은 후에 과정은 '죽은 자'가 아닌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그들의 편의에 의해 변화되어왔음을 알려준다.

홀로 내버려두면 인체는 썩고 부패하고 분해되어 영광스럽게 원래 나왔던 흙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을 막기 위해 시신을 방부처리하고, 무거운 보호용 관을 사용하는 관습은, 불가피한 것을 모면해보려는 필사적 시도이며 우리가 명백하게 해체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228쪽

사후 자신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에 대해 가족과 미리부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미련없이 강이나 바다와 같은 자연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해부용 시체가 되어 의학발전에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내어주고 가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군가의 추천사처럼 이 책은 그런 방식들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만드다. 단순히 남겨질 가족들의 편의나 국토부족의 이유를 넘어 자신이 어떻게 소멸하기를 바라는지를 생각하다보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잘해봐야 '시체'가 될 우리가 죽음보다 삶을 선택한 이상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책을 만났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안내서인 이 책은 당연하겠지만 '출처'에 대해서도 애정을 담아 자세하게 책 뒤에 참고서적과 저자들을 위해 페이지를 할애해주었다. 편집마저도 장례전문의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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