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창비시선 439
이영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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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439.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영재 시인의 첫 시집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를 처음 만났을 때 표지에 적힌 책의 제목보다 책표지에 무수히 그려진 잎맥을 바라보았다. 되어간다는 건 다른 편에서 보자면 '만들어지는 것' 혹은 성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잎맥을 통해 양분과 수분이 잎 전체에 퍼져나가듯 그렇게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로 이 책에 담긴 작품들에 영양을 주고 수분을 주었을거라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짧게 표현하자면 어려웠다. 전병준 문학평론가의 해설 속 말을 빌자면, '투명하면서도 모호한 언어의 배열에서 자주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라는 말처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싶어 읽고 또 읽었다. 시를 읽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확한 표현인지도 모른채 계속 읽었다. 결국 맨 뒤에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다시금 돌아와 시를 읽으니 조금씩 시인이 열어둔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작품 [흰검정]의 '흰검정'이 무슨말인가 싶었는데 동시에 드러날 수 없다고 정해져있는 것들이 사실은 동시에 보여질 수도, 혹은 정의내려질 수도 있는 실제를 표현한 것이란 말에 흰검정...의 상황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비평가는 이를 혼돈, 카오스를 시적 언어로 표현했다고 했고 나는 그냥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난다.' 라거나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든가. 이어진 작품들도 비평가에 의존하다보니 시인의 언어가 아닌 비평가의 '해설'의 언어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행히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라는 문구가 들어있는 [슬럼]은 해설이 없었다. 


보이는 걸 보고 있다 올려다보는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을 구태여 하지 않는다

보다가

본다

운명을 믿는 사람을 보고 있다

시간이 불타는 걸 보고 있다

포로들은 멈춘 버스에서 단장 중이다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슬럼] 중에서-


시를 읽기 전에는 시인이 되어가는 기분이라는 줄 알았다. 비평가도 시인도 아니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시 속에서 '되어가는 기분'은 철저하게 수동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포로'가 되어가는 중일수도 있다. 어쨌거나 '운명을 믿는 사람'을 '보고'있는 걸 보면 완벽하게 수동적인 삶은 아닐 것이다.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지 되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의지도 보인다. 비평가는 말한다. 언어에는 한계가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 중 시인은 '언어'를 선택한 것이고 화가는 '붓과 물감'으로 전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방식의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이 반가우면서도 쉽지 않은 그의 작품들 때문에 머리가 아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 시대의 아픔을 '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라 알아듣지 못하는 나조차도 알아들을 수 밖에 없는 시대가 가진 아픔이 느껴졌다. 


건물을 올리며 네명이 죽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략-


자연스러운 일이다 건물을 올리며 세명이 더 죽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청사진] 중에서-


최근에 내 머리와 마음속을 어지럽혔던 것들은 연대라는 단어와 글쓰기를 통한 치유,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현장에 없던 가해자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뉴스를 통해 수많은 사고 소식들이 들려오지만 안타까워 할 뿐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그다지 오래, 크게 아파하지 않았다. 아니 기억조차 하지 않고 살다보니 이런 작품이 눈에 들어올 때가 아니면 아예 내가 가해자는 커녕 '피해자'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가해자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 시집을 덮고서, 또 이 리뷰를 다 적고나면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잠깐의 다짐을 까다가 깬다'. -[노루잠]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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