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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천천히, 북유럽 - 손으로 그린 하얀 밤의 도시들
리모 김현길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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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눈에 보이는 풍경, 인물들을 카메라 대신 연필과 종이로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진촬영이 불가능한 미술관에서도 연필만큼은 허락되는 경우가 많아 그때의 감정을 노트에 담아올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드로잉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했다. 리모김현길 작가의 <혼자, 천천히, 북유럽>은 채색까지 잘 정돈된 여행스케치들이 듬뿍 담겨있다. 그림이 강점이 여행에세이는 내용이 다소 부실하거나 지나치게 감상으로 빠지는 경우가 흔했지만 이 책은 놀랍게도 미리 읽거나 공부하지 않으면 몰랐을 정보들도 함께 담겨져 있어 북유럽으로 여행계획을 세운 예비여행자들도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그리고 덴마트 순으로 4개국의 수도와 소도시를 담은 이 책은 맨 처음에는 드로잉 여행을 위해 필요한 도구들부터 간략하게 설명해준다. 초보자를 위한 고체물감 추천 브랜드와 더불어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짐을 꾸릴 수 있는 정보도 있지만 그보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도시가 가지는 역사와 특징을 알려주는 것이 좋았다. 첫 여행지인 핀란드 헬싱키는 여행 전후의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여행 전에는 다소 깐깐하게 느껴졌지만 막상 여행을 하고보니 복지시스템과 국가청렴지수가 높은 그야말로 살기좋은 도시에 대한 부러움이었다고도 말한다. 발트해의 아가씨라 불리는 이유는 하비스 아만다라는 여인상 때문인데 이는 핀란드 독립 기념을 위해 원래 파리에 있던것을 옮겨온것이라고 했다.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기 위해 들른 미술관 관람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예전에 런던을 여행했을 때가 떠올랐다. 테이트 모던으로 가던길에 엄청난 소나기를 맞았는데 그때의 나도 미술관 관람을 하면서 몸과 마음에 있던 축축한 기운을 떨쳐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관도 가보고 싶긴 하지만 그보다 더 가고 싶었던 곳은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나왔던 서점과 그 안의 카페테리아다. 촬영지였던 식당은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와 맛이었다는 저자의 말에 더 미련이 없어졌지만 그 유명한 알바 알토가 건축한 서점과 맛이 좋다는 카페에 앉아 영화속 그 장면처럼 누군가와 소소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졌다. 스웨덴에서 가보고 싶은 곳은 노벨수상자들의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노벨박물관을 방문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자 한국 유일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에게 선물한 고 이희호여사의 손으로 뜬 털신을 직접 보고 싶다. 그야말로 정성껏 한 땀 한 땀 떴을 그 털신을 보며 한 사람을 향한 애정과 존경을 담은 두 분의 마음을 간적접으로나마 느껴보고 싶었다. 노르웨이의 경우 저자의 말처럼 가톨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 유입되어 북유럽신화가 이어져 내려온 배경때문에 우리가 잘 아는 반지의 제왕, 토르 이야기등이 남겨진 장소들을 찾아가 보고도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근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스릴러물의 배경이 되는 그 어둑어둑한 도시의 풍경을 맘껏 느껴보고 싶었다. 물론 도시를 걷다가 국립미술관에 들려 뭉크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절규>만큼은 꼭 보고, 드로잉하고 싶다.

서두에도 적었지만 이 책은 뭐하나 아쉬운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나치게 사적이지도 않고, 드로잉마저 저자가 사람을 보는 그 따스한 시선이 느껴질정도로 고운데다 이 책을 들고 여행을 떠나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을만큼 도시의 특징은 물론 놓치면 안될 것 같은 장소들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북유럽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책은 이전에도 참 많았지만 북유럽뿐만 아니라 그동안 내가 다녀온 여행과 그 장소들과의 추억들의 소중함마저 불러일으키는 책은 처음이었다. 혼자, 천천히, 여행을 꿈꾸게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