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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평점 :
#예술하는습관
메이슨 커리의 전작 <리추얼>을 읽으면서 책에 포함된 유명한 작가들의 습관을 따라하면 뭐라도 되겠지? 싶었었다. 하지만 그런 책이 출간된다는 건 그들의 습관이 아무나 쉽게, 단기간에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여러 번의 기회 중 한 번 이었을 뿐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불가능했지만 되든 안되든 일단 정해진 원고지 매수를 채우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책장에 계속 꽂아만 두면 언젠가는 다시 시도할테고, 그렇다보면 습관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그런 습관은 생기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왜냐면 그들은 남자였으니까! 하지만 <예술하는 습관>의 그녀들의 이야기를 알고서는 순수하게 인정했다. 나는 여자라서, 가정주부라서 리추얼의 그들의 습관을 만들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열정, 간절함이 없었다라는 것을.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작가로 잘 알려진 그녀는 출산을 하고 얼마되지 않아 그 명작을 썼다. 흔히 임신을 하면 몸이 무거워서 그렇지 시간적 여유가 많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가롭게 태교를 핑계로 아무때나 자고 일어나도 된다고 말이다. 경험해보니 그것은 임신이 체질인(이렇게 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극소수의 여성이거나 임신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착각이었다. 요약하자면 글을 쓰기는 커녕 읽기에도 버거운 상태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시인인 남편의 배려로 글을 쓰는 것 자체는 눈치를 안봐도 된다는 것이었다. 살림과 육아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1800년대니까 그랬을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도리스레싱은 아들 피터를 양육하면서 글을 썼다. 전업작가로 살기 전까지는 심지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비서일을 구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하루일과는 아들의 기상시간 5시부터 시작된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학교 갈 준비를 도와준 이후라야 그녀에게 온전히 글쓰기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 온전히 글쓰기의 시간을 많은 것을 희생하고 매우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라는 메이슨 커리의 말에 나도 동감한다. 도리스 레싱은 더더군다나 밤을 새서 글을 쓸 수 있는 체력의 소유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밤늦게 까지 놀고 난 다음날에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보통의 사람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아야 했을까. 그렇다면 화가들의 삶은 또 어떨까. 지난 해 아이를 임신중이었던 나는 안타깝게도 졸업반, 즉 졸전을 앞둔 상태였다. 결론은 졸전에 아예 참가자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또한 핑계아닌 핑계였던게 아닌가 자문하게 만든 아티스트가 있었으니 '니키 드 생팔', 국내 전시회에도 갔었고 리뷰도 남겼었던 터라 여전히 그녀의 화려하면서도 특징적인 조각작품이 단번에 떠올랐다. 생팔은 화가인 미첼의 단 한 마디, "그러니까 당신이 작가 남편을 둔 그림 그리는 여자들 중 하나군요."(157쪽)라는 말을 듣고서 일년 뒤 두 아이와 남편을 두고 떠났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아이보다 일을 더 사랑해서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다. 어쨌거나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남기지 않을만큼 열심히 작품을 했으니까.
가사와 양육을 전담해야 하는 여성의 삶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성을 비난하거나 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의 <리추얼>에서 보던 정해진 시간이 일어나 커피 한잔을 마시고 산책을 한 후 아내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남성들에 비해 동일한 조건으로 글을 쓰거나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은 극히 드물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만 메리 셸리처럼 글쓰기 자체를 반대하지 않고 격려해주는 남편을 고마워 하는 것 또한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위에 적어두었다. 내가 그 일(예술활동)을 얼마나 하고 싶은지, 또 이를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지를 자문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말을 도리스 레싱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시행착오를 거쳐서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고 ,자신에게 양분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본능적인 리듬과 일정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