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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건디 여행 사전 - 여행의 기억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임요희 지음 / 파람북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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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특별함을 찾아보면 어떨까.
저자가 선택한 것은 '버건디'컬러를 찾아떠나는 여행이었으며 독자들에게도 저마다의 컬러를 정해 떠나보는게 어떠냐는 제안으로 여행은 시작된다. 저자가 만든 '버건디 여행 사전'은 '고무 다라이'는 내 생애 최초의 '탈것'이었다.(16쪽)로 시작된다. 지금은 고무 다라이에서 물놀이를 하는 경우는 과거로의 여행이 아닌 이상 일반적이지 않지만 밀레니얼 이전 세대들이라면 아마도 대부분 고무 다라이가 첫 수영장인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저자는 고무 다라이의 물온도를 통해 세상의 온도가 일정치 않다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기 시작한 조숙한 아이어서 그런가 아무생각없이 놀았던 내게는 오히려 그때의 다라이 속 물온도가 오히려 엄마의 사랑으로 가장 적당했다고 기억한다. 특히 버건디 룸 여행을 읽을 때에는 꼭 필요한 여행이며 권장해야 할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크여행'. 남영동은 지금도 내게는 동명의 영화를 떠올릴 만큼 암울한 기분이 바로 느끼게 하는 장소다. 저자가 언급한 영화는 <1987> 그리고 소설 <붉은 방>이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남영동 대공분실509호는 버건디 컬러였다. 좀전에 언급했던 고무 다라이가 꿈을 향해 떠다는 첫 번째 도구였다면 이번에는 죽음, 양쪽 모두 각자의 의미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거나 포기당하는 장소였다는 점에서 색이 가지는 양면성을 새삼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버건디 뼈'가 무엇인지 목차를 볼 때 궁금했었는데 다름아닌 '에펠탑'의 초기의 컬러가 버건디였다고 한다.
뼈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에펠탑은 말하자면 드레스는 벗어던지고 가터벨트만 하고 파티에 참석한 귀부인 꼴이었다. 그로부터 100년 뒤 가수 마돈나가 진짜 가터벨트를 내놓고 무대에 섰을 때 우리도 얼마나 놀랬던가. 89쪽
잘 알려진 것처럼 철근구조물로만 세워진 에펠탑이 세워질 무렵에는 환영받지 못했었다. 버건디 컬러였던 까닭은 녹방지를 위한 원료를 칠해서인데 현재는 브라운 컬러로 시민들의 투표로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공감했던 또 다른 키워드는 '성경책'이었다. 버건디 장정의 성경책은 기독교인들의 집이라면 검정색과 함께 혹은 양쪽 중 한 권은 반드시 소장하고 있는만큼 독실한 기독교집안이었던 외갓집, 지금은 부모님댁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버건디 장정의 성경은 내 상상력의 원천이다'(113쪽)라고 할 만큼 작가적 소양은 어릴 때부터 다른것인가. 고무 다라이에 이어 유년시절 그냥 놀기만 하고 엄마품만 그리워 하는 나와는 다르게 멋짐을 내뿜는 저자의 기억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다만 이번에도 역시나 아담과 이브과 '선악과를 먹은 사건'을 두고 당당히 인간임을 드러냈다는 말에서는 수치심에 알몸을 가리려고 숨었던 그들이었기에역시나 공감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저자와 동일하게 공감할 수는 없기에 오히려 이렇게 읽으면서 롤러코스터를 타듯 격하게 공감했다 안했다를 반복하는 것이 나름의 재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트렁크의 무게는 네 근이다. 여행가방만 봐도 두근두근 하니까. 내가 짐을 싸는 것이 아니라 이 짐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줄 거 같은 느낌이다.222쪽
두근두근 이라서 네 근. 이런 개그에 웃으면 아재인건가. 암튼 그녀의 말처럼 나역시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렛 컬러의 트렁크만 봐도 설레고 좋다. 기내반입 불가 사이즈라서 왠만하면 해외 아니면 장기로 떠나야하기 때문에 더 설레기도 한다. 이런 단순한 공감부터 서울을 제대로 보려면 떠난 곳에서 다시 봐야한다는 말까지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비단 내 나라 뿐 아니라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 시각,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위험한 사고다. 한 발짝, 혹은 그보다 더 멀리 혹은 그 반대쪽에서도 대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제대로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버건디 여행 사전을 처음에는 여행중에 버건디와 관련된 소품 혹은 장소를 발견한 것인 줄 알았는데 색깔을 정해놓고 그에 맞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인 것도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부터 권했던 것처럼 보라색을 찾아 나도 떠나고 싶게 혹은 사전을 만들어보고 싶게하는 실천유도형 책이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