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연필을 씁니다 - 젊은 창작자들의 연필 예찬
태재 외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여전히 연필을 씁니다 / 자그마치북스


"어떻게 연필을 수집하게 되었나요?" 우리가 흑심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바로 저 질문이다. 이렇게 대답하면 실망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처음부터 연필을 좋아해서 모은 것은 아니다. 172쪽


서랍장의 한 칸을 내어 연필만 모아두었다. 위의 발췌문과 같이 나 또한 처음부터 모으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전시회나 여행 중에 기념품으로 택한 것이 연필인 경우가 많아서였다. 값도 값이지만 사용하는 기간이 길 뿐 아니라 무엇보다 가벼워 이동중일 때 연필만한게 없기 때문이다. 사실 책<여전히 연필을 씁니다>를 읽기전에 내가 기대한 것은 필자들이 수집한 다양한 연필사진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특이하거나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은 사진들 뿐인 것이 아쉬웠다. 작은 판형인데다 분량이 많지 않아 포함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필자들의 상황을 그려놓은 일러스트는 한 장 한 장 아기자기하니 맘에 들었다. 또한 그들의 손으로 전해지는 연필 사용기, 혹은 애착기는 같은 유저로서 반갑고 정감이 갔다. 문구편집솝 디자이너 흑심의 경우는 연필이 주는 친근함과 더불어 어느 집이나 연필 한자루 가지고 있기에는 어렵지 않은 접근성이 연필수집을 하도록 이끌지 않았을까라고 말하는데 적극 동의한다. 기념품처럼 모았다고는 해도 애초에 집에 굴러다니는 연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연필 대신 자석 혹은 엽서나 우표 등 대체할 수 있는 소품들은 얼마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공간디렉터 최고요씨의 핸드백속에 혹은 필통속에 연필 한자루를 꼭 넣어가지고 다녔다는 사정은 내 이야기 같았다. 용돈을 받으면 편지지를 사러가거나 연필을 골랐다는 그와 달리 나는 스티커와 스탬프를 고르는 일을 우선순위로 했다. 어쨌거나 둘다 편지나 메모등을 할 때 연필과 함께 글을 꾸며주는 요소들이니 크게 다르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렇듯 개인의 취미나 관심사에 한정되어 있는 연필이야기도 있지만 편집자 김은경의 글은 편집자로서 오타수정과 관련된 헤프닝과 함께 ㅋㅋㅋ를 보면 떠올렸다는탕웨이와 김태용 감독과의 러브스토리까지로 번진다. 연필이 주제다 보니 이번에는 김혜원 에디터의 일기장과 관련된 얘기도 꺼내게 된다. 연필로 쓴 것만이 진정한 일기라고 생각했기에 오랜시간 일기를 적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글을 보면서 어린 시절 부터 빠짐없이 써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절시절 추억을 할 정도로는 명맥을 유지한 내 일기장들을 떠올려보았다. 펜으로 휘갈기듯 그날의 괴로움을 토해낸 일기장도 있었고, 나중을 위해 또박또박 정자로 써내려간 일기장도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필로 적었던 미래일기도 있었다. 미래일기는 반드시 연필로 적은 후 내가 예상한 혹은 바랐던 것과 실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지우개로 지워가며 일기를 수(?)정 하기도 했던 부끄러운 일들도 함께 떠올랐다.


연필을 쓴다는 것은 고리타분한 것도, 편집증 적인 것도 그렇다고 낭만에 취한 상태로 살아서도 아니었다. 눈에 띄는 것이 연필이었고, 주술처럼 반드시 그 연필을 책상위에 혹은 서랍속에 넣어둬야 할 것 같아서였을 뿐이다. 수집하는 연필들이 지나치게 고가이거나 오래된 연필들이라 쓰기를 주저하고 수집하기만 하는 이들도 있지만 필자의 말처럼 그럴수록 소중한 날에 연필을 사용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전히 연필을 쓰는'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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