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이여트
오마르 하이염 지음, 최인화 옮김 / 필요한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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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이여트>는 이슬람 문화권의 시인이자 학자였던 오마르 하이염의 로버이(4행시라고 불리는 페르시아 고전문학에서 나타내는 독특한 시형, 옮긴이의 말 중에서)들을 추려 낸 것으로 국내 최초로 페르시아어 원전을 첫 완역한 것으로 쉽게 만날 수 없는 페르시아 시를 접할 수 있는 기회와 더불어 이슬람 문화에 대한 정보도 역자의 도움으로 알게 된 것이 많았다. 우선 오마르 하이염의 작품속에는 '드링킹'에 대한 내용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먹고 취하자! 주의라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과 과거에 대한 후회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취하는게 어떠냐는 의미인듯 싶다. 포도주나 한 동이 마시자는 첫 번째 작품에 이어 '술 마시는 자가 지옥 간다면 내일은 빈 손바닥 같은 천국 보게 될 것이리라'(42번째 시)와 같은 직설적인 표현까지 자주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인간을 구성하는 4가지 체액, 담즙, 혈액, 객담, 비장을 의미하는 상징어도 있고 위, 아래, 좌우 등의 6가지 방향을 뜻하는 것등 상징어에 대한 의미도 역자가 시를 잘 이해할 수 있고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오마르 하이염의 로버이는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것이 없이 현세에 집중할 것을 권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오고 가는지, 왜 한 사람이 왔으면 다른 사람이 가야하는지를 따져묻거나 고민하지 말고 지금 앞에 놓인 술잔을 비우라고 말한다. 술을 마시는 행위가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잔이 거의 다 찼다는 의미가 노년을 뜻한다고도 한다. 오마르 하이염은 궁중의 점성사로도 활동하였는데 인간의 길흉화복이 하늘에 떠있는 별에 의해 결정짓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흐르는 이 세월에 우리네 자리 영원하지 않으니

술과 연인 없이 지냄은 크나큰 잘못이라네

언제까지 오래됨과 새로움에 희망과 두려움 가지랴

나 죽은 뒤 세상이 새것이든 옛것이든 무슨 상관이랴 127, 109쪽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결국 별들도 그 회전이 정신없어 결국 누군가에 의해 이미 운명은 정해져있다고도 말한다. 작품을 읽다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기독교적인 분위기(일곱 하늘, 일곱개의 천국)와 비슷한 절대자, 혹은 조물주를 경외하는 분위기도 느껴지고 현세를 현금으로 표현하며 외상(천국)보다 현금이 좋다라고 하면서 마치 신에게 기대기 보다는 지금을 누리자고 하는 부분에서는 무신론과 같은 분위기도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죽음을 잔에 비유하면서 누구도 그 잔을 피할 수 없으니 기쁘게 마시라는 것은 현자와 성인들이 죽음을 늘 가까이 하라는 말들을 떠올리게 했다. 4행시라 각 작품이 길지도 않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치열하게 연구하며 살았던 학자로서, 그 날 그 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술과 여인의 향기로 채우는 여유를 가진 시인으로서의 삶이 어떠한지를 편하면서도 재미있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를 적절하게 즐길 수 있어 역자의 노고를 칭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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