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 은밀하고 뿌리 깊은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
마야 뒤센베리 지음, 김보은.이유림.윤정원 옮김 / 한문화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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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 마야 뒤센베리 지음, 김보은 이유림 옮김 / 한문화


아프다는 것이 실패로 받아들여지고 건강관리가 도덕이나 선으로 여겨지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픔과 질병을 숨기는 것이 당연하고, 사회와 언론에서 날것으로 마주치는 정신질환 혐오, 장애 혐오, 소수자 혐오에 더 소외되고 위축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부터라도 더 많이 말하고 가시화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저자는 말하는 데 지쳤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 더 말해야 한다. 8-9쪽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조카가 조금만 아프거나 제 손으로 생긴 상처에도 전전긍긍하는 언니와 엄마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세상에 제 아이를 일부러 상처주는 경우는 정신이상 혹은 정신이상을 불러일으키는 심각한 신체적 질병 및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환자 혹은 이를 제외하고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보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소아과에 갈때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처럼 내 의사표현을 거의 하지 못하고 거의 무시에 가까운 대접을 받더라도 내 아이를 위해 굽신거리기까지 했다. 이것이 내가 관련 지식이 없어서일까 싶었지만 책<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의 감수자인 윤정원 의사도 자신의 직업을 말했던 안했던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소아과에 국한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책을 서문부터 읽기 시작하는 순간 결코 아이엄마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여기에 등장하는 통계와 의료사는 미국과 유럽에 한정되어 있어 한국과는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나 책을 읽다보면 감수자의 말처럼 공감가는 부분이 있음을 알게된다.

'젠더 편향적인 진단'을 이야기하면 의사와 소통할 때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1981년 논문을 보면 "개방적이고 감정적인 행동 양식을 보이는 여성은 질병에 대해 말할 때 의사가 여성의 말을 감정적인 문제로 생각하게 표현한다. 남성들의 절제된 표현 방식은 비슷한 말을 해도 의사가 심리적인 문제로 생긴 질병이라고 진단하지 않게 한다."라고 추측했다. 111쪽


위의 발췌문을 보면 여성의 경우 자신의 상태를 전달할 때 감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제대로 진단을 못내린것처럼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려준다. 즉 심각한 질병으로 병원에 내원할 경우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증세를 이야기해도 환자가 여성일 경우 병리가 아닌 심리적 호소라고 판단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여성에게, 남성은 남자의사에게 내원하면 상황이 개선될까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여의사의 비율이 절반 이상이거나 균등한 학과는 극히 소수며 학계를 포함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남자의사라는 점을 저자는 책의 전반부에 이미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 역시 자신의 몸이 아프고,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진단을 받고서야 대부분의 여성환자들은 동일한 질병을 확진받기 까지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의료계의 만연한 성평등이 근로자로서의 의사들의 불평등만이 아닌 환자로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느 것을 저자는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진이 '정상적'이라며 증상을 무시하는 유일한 환자 집단이 여성만은 아니다. 여성의 생식기 기능과 관련한 증상을 정상화하듯이 노인 환자, 트랜스젠더 환자, 과체중 환자에게도 증상이 정상이라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모든 사례에서 의사들은 본질적으로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환자의 정체성의 어떤 측면들을 너무나 자주 보지 못했다. 그들의 증상은 '비정상적인' 나이, 성 정체성, 혈액형의 '정상적'인 결과로서 무시된다. 340쪽


저자는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차별적 상황 뿐 아니라 미국을 기준으로 백인이면서 성인인 남자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가장 평등해야 할 병원에서 일어나는 불평등 중 여성에 대해 좀 더 중점적으로 다룰 뿐이다. 왜냐면 현직 의사들을 포함한 관련 남성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저자뿐 아니라 나 역시도 Doing harm(환자에게 해를 가함)을 경험하지 않았던 이전에는 심각하지도, '문제'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감수자는 이 책을 현직 의료진들이 읽어봐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자신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의료진은 물론 이와 같은 여성의 불평등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모든 이들이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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