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손을 보다
구보 미스미 지음, 김현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손을 보다 / 구보 미스미 지음, 김현희 역/ 은행나무


구보 미스미의 <가만히 손을 보다>는 직업이 요양보호사인 히나,가이토, 하타나카 그리고 히나가 사랑하는 미야자와 이렇게 네 사람의 이야기다. 자신을 길러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빈자리를 채워준 가이토와 잠시 사귀였지만 역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헤어지고 난 후 요양보호사 교육원 인터뷰를 통해 만나게 된 미야자와와 희망이 없는 관계를 가지게 된 히나의 이야기, 이런 히나를 사랑하면서 괴롭히고, 또 그로인해 다시금 그녀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가이토의 이야기 등 네 남녀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이들의 직업을 요양보호사로 설정한 까닭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평소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요양보호사의 이미지도 떠올려본다. 책에서는 이들이 요양보호사가 된 배경이 등장하는데 히나는 부모가 돌아가신 후 자신을 길러준 할아버지를 케어하기 위해 요양보호사가 되었고 자신의 직업을 바라보는 것 역시 죽음과 함께 사는 우울하고 어두운 사람이 아니라 그 길에 잠시 머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 직업은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며 거두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까지 이르는 시간 동안 옆에 살짝 다가서서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185쪽


반면 가이토와 하타나카는 일은 고되고 힘들지만 특별한 자격이나 부담스런 비용없이 취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직업을 선택한 배경이 그러하듯 이들의 사랑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내 친구 였는지 아니면 친척 아주머니였는지 잊어버렸지만, 매일 남자들과 노는 것 말고는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던 내게 "요양보호사가 되면 평새 먹고살 수 있어"라고 말해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108쪽

할아버지 역시 조건없이 홀로 남겨진 손녀를 돌봐준 것처럼 히나 역시 그저 자신의 마음이 가는, 사랑한다는 그 한 이유로 아내가 있는 미야자와를 사랑한다. 자신을 돌봐주는 가이토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은 있지만 사랑이 아니었기에 붙잡아둘수도 붙잡힐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이토는 생활고로 자살을 시도한 아버지가 그늘이 되어 자리잡았다. 아버지로부터 받고 싶었던 안정과 무한한 사랑은 히나를 향하지만 마치 끊어낼 수 없는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처럼 히나에게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런 가이토를 만나는 하타나카의 상황은 모성애가 당연한 것이 아니듯 한 사람에게만 안주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러명의 남자를 동시에 만나기도 하지만 그 누군가를 오래도록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미야자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랑을 하고 마음을 여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찾아온 히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된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이들의 손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다. 맘껏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배려와 보호를 노인들은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들의 직업이 결코 자신의 직업이 될 수 없다고 믿는 미야자와의 모습을 통해서 이들의 불완전하고 이해되지 못하는 관계를 바라보는 스스로 멀쩡한 사랑을 한다고 믿는 우리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요양보호사라니, 난 절대 못할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지만, 그 말은 히토미만이 아니라 나를 비롯한, 그날 인터뷰 촬영을 함께한 직원 모두의 의견이기도 했다. 221-222쪽​

어쩌면 한쪽에서 채워지지 못한 빈공간을 이렇게 채워가며 관계가, 사회가 유지되어가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완벽하게 사랑을 주고 받게된다면 어떻게 될까. 충분히 사랑받은 사람이야말로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 네 사람은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해서 한 사람에게 안주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사랑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직업도 이성간의 사랑도 이렇듯 불완전 것일까. 책의 맨 첫페이지에 작가인 구보 미스미의 다음과 같은 메세지가 인쇄되어 있다.


산다는 것의 애달픔을 마음껏 음미해주세요.


사랑한다는 것, 산다는 것 모두 즐거울 수만은 없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들 네 남녀중 진심으로 스스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면서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저자의 말처럼 산다는 것 자체가 애들픔 그 자체이기에 오히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나마의 행복을 위한 삶인가 싶어 문자그대로 이 책을 일고서도 그 애달픔을 한동안 음미할 수 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