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옥림 엮음 / 미래북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시는 마음의 본향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시를 읽어야 합니다. 시를 읽어야 마음의 본향인 인간성을 잃지 않습니다. 인간성을 잃지 않는 마음은 맑고 투명한 호수와 같아, 호수가 하늘과 별과 구름, 그리고 주변의 풍광을 살뜰히 받아 안듯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게 하지요. - 프롤로그 중에서-


시를 읽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르 한 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혹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의미라고 할 때 '시가 마음의 본향이기 때문'이라는 엮은이의 말은 지나치게 감성적이지 않아 마음에 와닿는다. 본향이라. 무엇보다 주변의 풍광을 안듯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삶의 희노애락은 물론 타인과의 다름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도 시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책 <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에 수록된 저자의 글과 소개하는 시들은 본향이 얼마나 선하고 포근한 것인지, 또 나누고 싶을만큼 좋은 것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1부는 한국시로, 2부는 세계명시로 꽃이 되어준 한국시, 사랑이 되어준 세계명시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그 중에서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와 김남조 시인의 <편지> 그리고 더글라스 맥아더의 <아버지의 기도> 세편을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사평역에서, 중에서>


책의 편집이 시의 원문과 함께 '시인의 시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간략한 작품설명과 함께 엮은이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찌보면 누구 한사람의 소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놓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건드려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사평역에서>의 사평역은 실재하는 역은 아니라고 한다. 만약 그랬다면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맞이했을텐데 하는 아쉬움 반 가상의 공간이기에 한편으로는 내마음속에서 여러분 수차례 방문할 수도, 떠날 수도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교차된다. 엮은이의 말처럼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특정 장면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출되어 어렵지 않게 다가와 깊은 울림을 남겨주어 마음에 와닿았다. 이어지는 시는 이전에도 좋았지만 다시 보니 더 좋아진 김남조 시인의 <편지>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

게 된다


<편지>중에서


예전에도 인정하든 안하든 분명 누군가를 사랑해왔을텐데 그때는 그저 좋기만했던 문장이 나이들고 사랑이 받는 것만도, 주는 것만도 아니고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사랑도 있음을 알아서일까. 울.게.된.다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마음에 꾹꾹 눌러찍게 된다. '시인의 시 이야기'에서 엮은이가 묻는다. '편지를 써 보고 싶은 이가 있느냐'며.


바라건대,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자극받아 분발하게 고난과 도전의 길로 이끌어주소서.

폭풍우 속에서도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도와주소서.


<아버지의 기도중에서>


아이를 만난 이후 거의 매일 기도를 했다. 그 기도는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기도였다. 아프지 않게, 외롭지 않게, 시련이 찾아오지 않게 등 성숙을 위한 그 어떤 고통도 받아들일 수 없음 초라한 기도였다. 나의 기도와 달리 더글라스 맥아더의 시는 담대하고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 보여주는 시다. 아이를 보면서 누구보다 강한 것이 엄마가 아니라 강해져야만 하는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 배운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픔도 감수해야 하는 아이를 지켜보기 위해서 강해져야만 하는데 이 시를 읽으면서 또 여전히 나약한 엄마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 시가 그렇다. 엮은이의 말처럼 내 마음의 본향이 어디로 어떻게 흐르는지, 혹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깨닫게 해준다. 그렇게 책<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를 통해 내 마음의 시의 자리를 좀 더 확장시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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