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 신동엽시인 서거 50주기 기념 시그림집
신동엽 지음, 김형수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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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 신동엽 지음 / 교보문고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 4월의 시인이자 저항의 시인이기도 한 시인의 작품과 그림이 함께 담긴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익숙한 시를 대표작을 시작으로 시와 어우러져 때로는 푸르게 때로는 참혹하게 시적 분위기를 압도하는 그림이 어우러져 그림을 보면서 시를 다시금 읽게 되는 구성 자체가 정말 맘에들었다. 무엇보다 시인의 시가 참 좋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시 <봄의 소식>은 희망이 어디론가 사라져 다시는 오지 못할 것 처럼 위독하다든가, 선지피를 흘린다는 참혹한 현실을 이야기하다가도 결국 마지막에는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와서 몸단장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며 꺼지지 않는 희망에로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에서도 여지없이 안타깝다는 말조차 사치로 여겨질만큼 힘없이 스러져가는 생명앞에서 나약하고 고독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끝내는 제목에서처럼 '이길 것이다'라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렇듯 다분히 희망으로 귀결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약자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들도 있다. 그런가하면 저항시인으로서 면모를 떠나 시인 그자체, 인간의 유한한 삶과 나약한 심신을 이야기하는 작품들도 있다. 처음 책을 읽으려고 했던 것은 저항시인으로서의 대표작이었으나 막상 작품을 대하고 나니 <영影>이야 말로 아, 시인이여, 하고 탄식할 만큼 마음이 흔들렸다.

영影

버스에 오르면 흔들리는 재미에

하루를 산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와도

먹먹한 가슴 굳어만 갈 뿐

나타나줄 것 같은

비가 내리는

어둔 저녁에도

너는 없었다.

대폿집 앞에 서면

부서지고 싶은 대가리

대가리를 흔들면서

전찻길을 건넌다.



댕그랑 땡

미친 가슴처럼

아스팔트 바닥에 쏟아지는

통쾌한 중량의 동전닢

버스에 오르면 울고 싶은 재미에

하루를 산다.

-이하 생략-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적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버스에 오르면 ㅇㅇ하는 재미'의 구절이 너무나 공감되어 먹먹해졌다. 흔들리는 재미에 기점에서 종점까지 하염없이 오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울고 싶은 마음에 고속도로를 오가는 광역버스에 올라 뒷자석에 몸을 깊숙히 들이밀고 앉아 창을 바라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윤동주의 <자화상>속 사내를 만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영>과 함께 등장한 최영 화가의 작품이었다. 그의 그림은 이 책의 표제그림이 된 <그 사람에게 우리 왜 우리 인사도 없이 지나쳤는가> 등과 함께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들보다 신동엽시인의 작품과의 조화가 가장 맘에 들었다. 다시 시로 돌아오면 <왜 쏘아>라는 작품은 읽는 내내 최근에 읽었던 한국전쟁을 포함한 킬링필드를 비롯 각국의 내전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 떠올라 괴롭고 힘들었다. 시의 일부만 봐도 아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쏘아.

그들이 설혹

철조망이 아니라

그대들의 침대 밑까지 기어들어갔었다 해도,

그들이 맨손인 이상

총은 못 쏜다.

왜 쏘아.



우리가 설혹 쓰레기통이 아니라

그대들의 판자 안방을 침범했었다 해도

우리가 맨손인 이상

총은 못 쏜다.

<왜 쏘아 중 일부> 71-72쪽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시인 신동엽 50주기기념 시그림집으로 뒷표지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식민, 전쟁, 독재의 상처로 얼룩진 대한민국을 온몸으로 통과한 사람, 시인 신동엽'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또 끄덕인가. 그야말로 온몸으로 통과했다는 말 외에는 적확한 표현이 없어보인다. 시인은 개인의 아픔뿐 아니라 사회의 울음을 시로 표현하는 사람 그 자체였다. 시인의 시에 더해진 그림들의 특정 화가의 작품을 언급하긴 했지만 다른 작품들도 서두에 밝힌 것처럼 조금의 부족함이나 어긋남없이 시와 잘 어우러져 정말 좋았다. 가슴을 울리는 많은 시들이 있지만 당장의 우리가 살아내는 이 땅의 아픔을 노래한 시인의 시를 모르고는 안될 말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누구라도 꼭 마주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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