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노래
나카하라 추야 지음, 엄인경 옮김 / 필요한책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염소의 노래/ 나카하라 주야 /필요한 책


나카하라 주야의 <염소의 책>은 1934년, 시인의 첫 시집이며 같은해에 그의 첫 아들 후미야가 탄생했다. 안타까운 것은 후미야가 만 세살이 되기전에 세상을 떠난 뒤 시인도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결국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그의 두 번째 시집<지난 날의 노래>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이었다. 사실 나카하라 주야의 첫 시집은 물론 사후 작품집이 출간되었을 때만해도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것처럼 2019년, 이웃나라에 번역본이 출간될 정도로 시에 녹여져 있는 그의 감성은 더할나위없이 시인의 감성 그 자체였다.


상실한 희망 (p.127-8)

어둔 하늘로 사라져 갔노라

내 젊은 날 불태운 희망은,


여름밤 별 같은 것은 지금도 여전히

머나먼 저 하늘에 보였다 말지, 지금도 여전히.


어둔 하늘로 사라져 갔노라

내 젊은 날 꿈과 희망은,


지금 다시 여기 엎드려

짐승 같은 것은, 어둔 생각을 하지.


그러한 어둔 생각 어느 날

맑게 갤지 알 길 없어서,


빠져든 밤 바다에서

하늘의 달, 찾는 것과 같지.


그 파도는 너무도 깊고

그 달은 너무도 맑아,


서글퍼라 내 젊은 날 불태운 희망이

바야흐로 이제 어둔 하늘로 사라져 가 버렸지.



시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이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 한 줄, 아니 단 하나의 시어가 마음을 흔들어도 그 작품은, 또 그 작품을 쓴 시인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수 밖에 없다. 위의 발췌한 작품의 경우는 시어 하나하나, 행 하나하나가 다 와닿아 읽고 또 읽었다. 나이얘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중년이라 그런건지, 희망이 문자 그대로 희망이 아니라 남은 생을 버텨내기 위한 마지막 보루임을 알아서인지 반복되는 '내 젊은 날 불태운 희망'이란 말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뒤에 이어지는 <내 성장의 노래>도 만만치 않았다. 이 작품이 맘에 들었던 또 다른 이유는 눈이 내리는 밤의 서글픔을 잘 표현해서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특별히 직접 찾아보았으면해서 이곳에는 옮겨놓지 않았다. 눈이라는 존재가 시인의 성장과 관련해서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를 유년기, 소년기, 그리고 청소년기에 이어 스물 셋에 이어질 때까지 표현했는데 마치 이 작품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한 겨울 깊은 밤 가로등밑에서 홀로 눈을 맞고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서럽고 서러운지 느꼈던 적이 있다면 분명 시인의 작품을 한 번 아니 오래도록 곁에 두고 혼자 몰래꺼내 여러번 보게 될 것같다. 이와 같은 감성을 가진 것이 축복인지 저주였는지 아이를 잃고 난 후 얼마나 상심이 컸을지를 생각하니 아무리 시를 다양한 감정으로 마주하려해도 쉽지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 내 감정 상태가 이런 작품들에만 반응했었기에 모든 시에 다 마음이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천진한 작품에도 마음이 동했을 수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아니면 내년 봄에 다시 시집을 펼쳐본다면 어떨까. 다다이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시인 나카하라 주야. 정말 오랜만에 이런 문학적 분석과 이론을 다 멀리하고 작품에만 몰입해서 빠져들었던 것 같다. 가을인데 가을인데, 자꾸만 등장하는 시인의 '눈'이야기 덕분에 한 겨울 눈내리는 밤 한가운데에 계속 머물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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