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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인간 - 개정증보판
박정민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찌질했었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모두, 행복하시라. 69쪽
배우 박정민. 혹은 작가 박정민. 양쪽 모두 잘 어울리는구나를 책<쓸 만한 인간>의 개정증보판을 읽고서야 느꼈다. 몇 해전 처음 읽었을 때는 뭐랄까, 부러움과 질투에 눈이 멀었었나보다. 그 사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고 다시 읽으니 이번에는 자꾸 자꾸 '행복해질거다, 잘 될 거다'란 식의 저자의 작은 응원들이 기분좋게 들렸다. 최근에 화제가 된 영화<엑시트>를 보면 만년백수 주인공에게 주변사람들이 앞으로 ' 될 거다'라며 위로하지만 결국 재난현장 한 가운데에 남겨지게 되자 잘되긴 뭐가 잘되냐며 분노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예전에 내가 딱 그랬다. 그랬던 내가 그 사이 나이먹고 겸손해진건지 아니면 정말 잘된일들이 많았음을 이제사 깨달았는지 박정민 배우의 저 위로들이 맘에 와닿을 뿐 아니라, 맞아요! 하며 맞장구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참 따뜻한, 좋은 기운이 많은 사람이구나를 느끼게 되었는데 동물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보여주기 식이 아닌 진실로 따뜻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필터링 되지 않은 이야기가 오히려 엄마에 대한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래도 역시나 마음을 오래 끄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가만히 보면, 모두가 의외로 살아 있다.'
저자의 말처럼 죽지 못해 살더라도 살아있다는 말, 그것을 느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참 부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타인을 느끼게 된다면 그에대한 배려와 이해도 함께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왜 저래', '왜 사냐'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방을 무시하게 되고 쉽게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그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생명경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은 '나만 살아있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찌질하게 살았더라도 지금 그렇지 않으면 된다. 지금처럼 알려진 배우가 되기 전까지, 그래서 누구누구의 친구라며 자신을 소개해야하고, 연애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당시의 박정민의 이야기 속에 그의 태도는 한결같다. 지나친 긍정과 연쇄적인 오해속에 살았던 것 같아 보여도 상대방을 완벽한 악인이라고 단정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상처도 덜 받았던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의 삶을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보고 희극이냐 비극이냐 하기 전에 일단 '영화 같은 인생'이라고 결론내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독자 모두가 제 각각 저마다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 괜스레 설레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사는 동안 단 한 권일지라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을 출간하고 싶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내 마음이 달라진 까닭도 있겠지만 배우로서의 박정민을 보는 시각자체가 달라져서 책이 더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이전에 읽을 당시에는 영화<변산>,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기 전이었다. 특히 피아노에 천재적 재능을 지닌 서버트증후군 진태역의 박정민을 보면서는 정말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 그랬는지, 함께 본 사람이 엄마여서 그랬는지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동이 꽤 오래갔다. 역시 배우는 글도 좋지만 연기로 말해야 하는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설사 그것이 개정증보판일지리도) 읽는 내내 킥킥 거리기도 하고 별도의 표기도 하며 이전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다. 개정판 출간에 엄청나게 적극적이진 않았던 것 같지만 출판사에서 개정판을 내기로 한 건 잘한 것 같다. 덕분에
'글도 쓰는 배우'에서 '연기만큼 글도 맛깔나는 배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상식에서 박수만 치던 배우에서 이제 당당하게 수상하러 가는 작가가 된 배우여! 그게 언제일지라도 산문이든 아니든 작가로 또 찾아와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