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안셀름 그륀 지음, 김현정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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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만족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세상의 잣대로부터 내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이미 우리 영혼의 기저에 존재하는 평화의 공간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이러한 내적 평화의 공간, 우리 안의 고요함과 맞닿을 때 우리는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231쪽



안셀름 그륀의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는 만족의 다양한 특성에대해서 이야기한다. 또한 만족이란 것이 단순히 한 가지 측면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부분과 연결되어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삶의 만족할 때 참 평화, 행복이 찾아오는 것일까? 대답은 그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왜냐면 과도한 만족은 결코 참 평화를 불러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도한 만족은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불만족과 닮아있다고도 말한다. 자기 삶의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쉽게말해 자신을 과도하게 바꾸려고 한다. 바꾸지 못하면 자신이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자학하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반복된 실수또한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한다. 저자의 자신이 처음 수도생활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리며 온전히 자신을 받아들일 때만이 참평화에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온전히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 소중한 내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그렇다면 내 의지와 힘으로는 결코 변할 수 없다는 뜻이냐고 반문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자신을 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수사가 쓴 만족과 관련된 책에서 만족이란 세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주님에 대한 만족, 자신에 대한 만족 그리고 타인에 대한 만족이다.



융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그 시기에 어떤 상처를 경험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구체적인 자신의 개인사와 화해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라고 말합니다. 182쪽



그렇기 때문에 주님에 대한 만족이 가능해야만 나를 받아들 수 있고 비로소 타인의 부족함과 실수를 받아들이며 통합적인 만족, 즉 평화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 혹은 관련 학문을 공부할 때마다 유년시절 자신이 상처받았던 상황을 떠올리며 현재 자신의 문제가 제대로 치유되지 못했음에 기인한다며 자포자기 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그때의 상처가 아무리 큰 영향을 미쳤다고해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금에라도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화해하는 것이락 볼 수 있다. 어원적으로 보면 평화로움이란 사랑을 전제로 한 보호받음과 자유로움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화해하지 못하고 계속 탓만하는 것은 사랑과 정반대로 자신의 상황을 몰아가는 것과 같다.



종교적 삶에는 기본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받아들인 것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나 자신이 거부한 것은 나에게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내가 사랑과 겸손의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만 변화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 202쪽


종교적인 측면이 다소 강하게 드러나지만 저자가 처음부터 끝가지 일관적으로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받아들임' 즉, 우리가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상하는 무언가가 되기위해 억지로 변화될 필요도 없고, 부족한 자신을 탓하면서 삶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그저 자신을 지금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과도한 만족이나 불만족이 아닌 정상적인 만족감으로 삶을 채울 때 우리는 진정한 평화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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