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시 - 아픈 세상을 걷는 당신을 위해
로저 하우스덴 지음, 문형진 옮김 / 소담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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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본다.
상실의 아픔으로 괴로워했을 때 나는 시를 떠올렸던가. 혹은 시가 아닌 소설 혹은 영화라든가 음율을 떠올리긴 했는가. 아니었다. 그저 붙잡고 울었다. 그 괴로움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나를 향한 빛이 다시 비춰지긴 하는것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던 그때가 있었다. <힘들 때 시>라니. 실소가 터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극한의 고통이 끝나고 난 후 우연히 스친 한 구절의 문장 혹은 시를 통해 우리는 그제서야 완벽하게 고통에서,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기억은 분명이 존재한다. 마치,


단 한번이라도 나에게 쏟아 내렸다면,
그것이 실제였다는 것을 -


마리 하우의 [수태고지]의 일부처럼 말이다.

살면서 상실의 아픔은 여러방법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의 소개된 10명의 시인 그리고 추가로 소개되는 다른 문인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읽어야 한다. 그것이 연인과의 결별일 수도 있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믿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적 사건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 사건들의 주체가 아닐 수도 있다. 아니, 결코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가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분노와 좌절만이 가능한 것일까. 시는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다. 시는 말한다. 우리 모두가 그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이제 최악을 알게 되었으니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웬델 베리 [이제 최악을 알게 되었으니]를 통해 베리는 두가지 측면에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 미안함은 인간이 타인에게 저지를 수 있는 행위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력하고 속수무책인지를 자인하는 말이다.

베리의 ‘미안’함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책임감에 대한 고백이다. -중략-
그의 자손들이 자신들의 인류 역사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와 함께 느끼게 될 공포를 무려주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이다.  P.124-5

개인적인 아픔에 대해, 그 상실을 담은 작품을 일부러 제외시켰다. 지금 내가 상실의 눈 한가운데에 들어있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개인적인 상실보다 연대적인 상실에 대해 책임을 가져야 한 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대적 상실의 책임을 진다고 해서 개개인이 가지는 회복을 외면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빛이 “숨겨진 것”과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기꺼이 왔다는 표현 속에는 빛이 존재하지 못할 곳은 없으며, 아무리 어둡고 슬픔으로 가득하고 잊힌 존재의 구석일지라도 길을 찾아낼 것이라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다. p.108



잔 리처드슨의 <빛이 오는 방법>의 시의 구절을 풀이한 것으로 빛은 특정 대상을 선별해서 비춰주는 것도 아니고 제한된 구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모든 것을 내 맡길 대, 비로소 빛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자세가 되었을 때 빛이 이미 존재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저마다의 슬픔으로, 좌절로 힘들 때 시의 역할이 어느정도 인지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수십년간 감옥에 갇히는 물리적인 족쇄에서도, 마음의 감옥에서도 시만 있다면, 시인의 마음으로 사물과 주변을 바라볼 수 있다면 분명 자신만의 보석,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쪽 길입니다.
붙잡혀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굴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짐 히크메트 <이쪽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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