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베첸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최정윤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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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베첸토 / 알레산드로 바리코 /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원작







뮤지선 김정범의 말처럼 이 책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평생 배에서 내리지 않았던 어느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다.

책을 읽기전에는 어쩌다 평생 배에서 내리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배에서 내리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은 한걸까?


혹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베첸토가 배에서 내리지 않았던 것, 그리고 결국에는 내리지 못했던 것은 지구의 끝을 볼 수 없는데에서 오는 두려움과 불안함이었다. 88개의 건반위에 손을 올리면 천재적인 능력덕분에 한계없이 건반을 뛰어다닐 수 있었지만, 실제 육지에 내리려 했을 때 그가 무한한 세상을 견뎌낼 만한 무기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구마 먹은 답답함?

그런 답답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책을 읽지 않은 지인에게 간단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처음부터 끝까지 고구마라고...)

활자를 통해 들리지도 않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이런 답답함보다는 그것이 설사 배안에서, 그리고 피아노 건반위에서 한정되었다 할 지라도 30여년이라는 삶 중 절반이상을 자유로이 뛰어놀았다면, 그토록 제한된 상황에서 무한의 자유를 맛볼 수 있는 삶이라면 지금의 나보다, 혹은 열린 공간에서도 스스로 감옥을 사는 누구들에 비하면 훨씬 아름답고 부러운 삶이라고 생각되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노베첸토의 그 천재적인 연주가 궁금해졌다. 검색하니 영화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노베첸토와 재즈창시자와의 경합장면이 편집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책속에서 노베첸토는 명연주자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린다. 도무지 경합이라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늘 자신의 연주가 전부였던 세상에 그야말로 '재즈 창시자'라는 사람이 직접 자신에게 다가와 연주를 해주니 어찌 눈물이 흐르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그럴맘으로 배까지 찾아온 것이 아니라. 무너질지도 모르는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노베첸토를 이기고야 말겠다는 그의 긍지에 결국 노베첸토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맘껏 펼쳐보인다.






27년 동안 세상은 그 배를 스쳐지나갔고 그는 27년째 배에서 세상을 엿보았다. 그리고 세상은 그의 마음을 훔쳤다.
그는 이러 면에서 두말할 필요없는 천재였다.

들을 줄 알았고 읽을 줄 알았따. 책이 아니라 사람을, 그는 사람들을..... 그들이 가진 흔적, 장소, 소리, 냄새, 그들의 땅,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 줄 알았다. -본문 중에서






노베첸토의 손이 보이지 않을만큼 빠른 연주에 모두들 멈춰버리고 만다. 동료연주자도, 관객도 그리고 재즈창시자조차 그의 연주를 그저 바라볼 뿐이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고, 자신의 가발이 벗겨진 줄 도 모르는 이들도 있다. 만약 영화가 아닌 만화로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상상도 들긴 하지만 영화에서도 충분히 노베첸토의 열의는 살아숨쉬고 있었다. 연주가 끝나고 피아노 현에 담배를 가져가니 불이 붙을 정도의 연주라니.









불이 붙이기 전에 피아노 위에 담배를 올려두었던 노베첸토. 마치 하나의 표상인듯 불붙인 담배를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연주하는 재즈창시자의 심리 변화를 담배를 통해 보여주는 듯 했다. 노베첸토의 연주가 끝나고 그의 마음속을 태운 것은 패배였을까, 아니면 자신과 같은 재능있는 연주자에 대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안타까움이었을까,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그저 동료애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노베첸토가 배에서 내리지 못했던 이유는 리뷰 서두에 이미 적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평생'배에서 내리지 않았던 부분이 더 궁금했었다고도 적었다. 다 읽고 난 이후에는 평생 배에서 내리지 않았던이란 수식이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거나, 평생 해외로 나갈 수 없었다던가(마치 만화 노다메칸다빌레의 누구처럼)와 마찬가지로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한한(자원적인 측면이 아닌)자연, 시간앞에서 유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느냐가 중요함을 느꼈으니까. 그래서 내가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88개의 건반앞에서 무한으로 자유로웠던 어느 피아니스트 이야기' 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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